채영주의 「목마들의 언덕」은 모두 11편의 단편소설이 연작형태로 묶여 있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남도의 작은 마을에 자리한 「천사의 집」이라는 고아원을 무대로 하고 있는 이 작품집은 각각의 독립된 이야기들이 선후관계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느슨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연작소설에 가깝지만 이야기가 삽화적으로 분산돼 있지 않고 점층적으로 발전하는 형식을 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장편소설로 분류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연작소설에 역점을 둘 경우 이 작품은 우리 사회의 외곽에 위치한 채 이렇다할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는 고아원이라는 이색적인 공간의 생태를 다면적으로 접근해 형상화했다는 점이 부각될 것이고 장편소설에 강세를 둘 경우 작품의 화자인 동우라는 소년의 정신적 성장의 궤적에 더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 동우는 연령적으로 고아원을 경영 관리하는 성인들과 나이어린 철부지원생들 사이에 위치해 있는데 그 결과 이 양자의 세계를 오가면서 고아원 안팎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하게 된다. 즉 작가는 조숙하면서도 어린아이다운 순진성을 완전히 탈피하진 못한 화자의 시선을 빌려 고아원이라는 축소된 공간에 반영된 우리 시대의 삶의 단면들을 수집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 단면들은 공간적 한정성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다양해서 광주사태의 비극(「상처」)이 포착되기도 하고 전교조문제(「유령의 집」)나 미국의 제국주의적 행태에 대한 비판(「아름다운 나라」)이 담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이러한 주제를 날 것 그대로 생경하게 드러내기보다는 적절한 상황설정과 생동하는 인물을 통해 우의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한층 높은 효과를 거두고 있다.
작가가 능숙하게 구사하는 유머와 소설결말의 낙관적 여운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태도는 대단히 비관주의적이다. 인생살이란 회전목마와 같아서 「등짝 깊숙이 단단한 쇠파이프 한 가닥씩을 꽂고서 제자리를 맴돌」뿐이라는 것이다. 고아원을 탈출하고자 한 소년은 붙잡혀서 돌아오고(「천사가출」) 상두라는 선배원생은 거짓말과 도벽으로 점철된 잘못된 삶의 방식을 끝내 버리지 못하며(「명수」) 고아원을 떠난 뒤 한때 희망찬 삶을 꾸려나가는듯 보였던 원희 또한 자기 아이를 다시 고아원에 맡겨야 하는 지경에 내몰린다(「아름다운 나라」).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소망을 배반하는 이 세상의 질서에 대한 강력한 거부이자 탄핵으로 읽힌다.<남진우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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