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아’ 파격 가사/인기 한몸에/미·일에 진출/한국얼 심기도68년말 데뷔한 「펄 시스터즈」는 가요계에 강력한 체질개선 바람을 몰고왔다.
20세 전후의 배인순 인숙자매는 노래만 잘하면 가수가 되던 시대를 바꿔 놓은 것이다. 빼어난 가창력과 미모를 지닌 그들에 의해 한국의 비디오가수 시대가 열렸다.
그들의 데뷔곡 「님아」(신중현 작사·작곡)는 진부한 사랑타령에 길들어 있던 대중을 어리둥절하게 만들며 가요계의 방향을 틀었다. 그것은 폭탄 같았다.
가슴으로 육박해오는 강한 박자, 두 젊은 여성이 호소하듯 혹은 절규하듯 외치는 후렴 「님아!…」등은 당시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던 파격이고 충격이었다.
<나를 떠나간 내님아 언제나 돌아 오려나 …젊은 날의 내 청춘도 지나가 버렸건만은 변함없는 사랑은 오늘도 기다려지네 …님아! 님아!…>나를>
솔풍의 노래가 없지 않았지만, 이 노래가 순수 국산이라는 점은 특히 혁명적이었다. 더구나 연애감정을 직설적으로 토로한 노랫말에 어르신들은 「말세」라고 탄식하기도 했다. 동생 인숙씨는 『반응이 극과 극이었어요. 그렇지만 곡이 워낙 좋았고 많은 사람이 노력을 했어요.』라고 말한다.
취입 전 이 노래는 「불을 보듯 뻔한 실패」로 여겨졌기 때문에 우여곡절을 겪었다. 신중현씨는 박성배 킹프로덕션 사장을 설득했다. 녹음중에도 박사장은 소파에 누워 잠을 잘 정도로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드디어 「님아」가 폭발했다. 베트남전 파병등으로 우울해진 사회 분위기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던 대중이 파격적인 이 노래에 열광한 것이다.
『부산의 한 방송국 쇼무대였어요. 사회자가 「펄시스터즈 차례」라고 말하자 함성이 터져나오더군요. 「님아」라고 곡목이 소개되니까 아주 난리가 났습니다. 「눈을 떠보니 유명인이 되어 있었다」는 말이 실감나더군요』 인숙씨의 회상이다. 그 후는 탄탄대로였다. 같은 음반에 수록된 「떠나야 할 그 사람」 「커피 한잔」등이 연속 히트하면서 그들은 데뷔 1년만인 69년 말 MBC 10대가수 가요제에서 가수왕에 올랐다.
이후 일본과 미국으로 무대를 넓혔던 펄시스터즈는 언니 인순씨가 76년, 솔로로 활동하던 인숙씨가 83년 결혼하면서 일상의 평범 속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 음악의 여운은 아직도 남아 있다.<권오현 기자>권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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