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국가라 해도 참된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역사적 발전단계와 정치권력의 구성요소에 따라 그 내용은 천차만별이다. 중남미에서는 80년대 이후의 민주화가 진짜인가 허구인가를 가름할 만한 일들이 최근 잇달아 일어나고 있다. ◆지난 5월30일 칠레 최고재판소는 76년의 외무장관 암살사건 주모자 콘트레라스 전국가정보국장에게 7년 징역형을 선고했다. 17년동안 칠레를 통치한 피노체트장군은 아직도 민간정부에 맞서는 군부의 막후실력자로 군림하고 있고, 실형을 선고 받은 콘트레라스는 그의 가장 아끼는 측근 인물이다. ◆군부는 콘트레라스가 고혈압을 앓고 있다는 핑계를 붙여 그를 해군병원에 입원시키고 군병력을 배치해 경찰의 법집행을 공공연히 방해했다. 일종의 「소프트 쿠데타」가 발생한 것이지만 반란을 진압해야 할 군부가 정부와 대립하고 있으니 민간정부로서는 군과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교도관을 병원에 파견해 그를 「감시하」에 두는 것으로 한달만에 겨우 사태를 수습했다. ◆중남미 각국에서는 전에도 비슷한 일이 여러 차례 있었다. 이때문에 우루과이·아르헨티나·페루같은 나라들은 현재 군의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 형사문책하지 않는 면책법을 만들어 정부와 군이 양립하는 기묘한 형태의 민정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민간정권이 군을 두려워해 원칙을 포기했다면 민주주의는 존립의 근거를 잃는다. ◆냉전후 세계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가 지배적 이데올로기로 정착되고 있다. 각국의 공산·군사정권이 잇달아 몰락하고, 그자리에 민간정부가 들어서고 있다. 그러나 여러 나라의 경우를 보면 민간정부가 반드시 민주주의와 동의어는 못된다. 과거 특권계층과 연결된 불의와 부패의 사슬을 끊을 수 있어야만 참된 민주정부임을 자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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