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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지면평(이재경 이화여대교수·신문방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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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지면평(이재경 이화여대교수·신문방송학)

입력
1995.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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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사생활 보호 조화 이루길/삼풍피해자 공론화 신중한 자세 필요신문기사는 사회각층 사람들이 서로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묘미를 갖는다. 이같은 특성때문에 기자는 글을 쉽고 간결하게 쓰기를 요구받는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시각에서 읽는다는 사실은 신문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한편으로 뿌듯한 자부심을 북돋우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항상 떨칠 수 없는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한다. 나의 글을 당사자들은 어떻게 읽을까? 혹시 특정집단의 이미지에 피해를 주거나, 특정인의 명예를 손상하지는 않을까?

기사거리를 제공한 사람에 의해 이용당하는 것은 아닌가? 과연 내가 쓰는 글은 신문의 존립근거이기도 한 공익에 이바지하는가?

이같은 두려움과 책임감이 온몸을 누르지만 기자는 마감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글을 내놔야하고, 신문은 나가야 한다. 여기에 글쓰는 사람의 철저한 윤리의식과 편집국의 체계적 기사거르기 장치의 중요성이 자리한다.

한국일보는 1일자 30면 왼쪽하단에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피해를 입은 정계와 재계, 그리고 법조계 인사들의 이름과 가족 피해상황을 보도했다. 과거 고관이었던 아무개씨의 딸이 실종됐고, 내노라하는 대기업 임원들이 모두 몇명의 가족을 잃었으며, 근처에 사는 법조인 가운데는 누구 누구가 부인과 아이들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 기사는 이같은 지도적 인사들의 슬픔을 모두 함께 나누자는 시각에서 읽혀질 수도 있다. 그들과 교분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개인적 정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지않은 사람은 이 기사를 통해 사고로 희생된 가족의 사생활을 짐작하게 되고 삼풍백화점이 갖는 사회적 상징성과 결부시켜 전혀 다른 해석에 도달하기도 한다. 삼풍사고로 희생된 사람들의 대부분은 사생활이 공개돼도 좋은 공인이 아니다. 기사에 이름이 거론된 사람들도 공인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같은 점을 고려하면 이 기사는 많은 사람의 사생활을 당사자들의 동의없이 공론의 도마위에 올린 셈이다.

1890년 새뮤엘 워런이라는 미국 변호사와 루이스 브랜다이스라는 보스턴의 사업가는 「개인생활에 관한 권리(THE RIGHT TO PRIVACY)」라는 글을 하바드로 리뷰지에 기고했다. 그들은 이글을 통해 당시 미국언론의 지나친 사생활 침해를 비판하며 언론에 의해 가해진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을 청구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를 제시했다. 워런과 브랜다이스는 이와함께 언론에서 「혼자 버려둬 질 수 있는 권리(THE RIGHT TO BE LEFT ALONE)」라는 개념을 주장하며 개인생활의 보호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하기도 했다.

위의 삼풍피해자 기사는 다른 신문들도 거의 모두 다뤘다. 그렇게 보면 이는 우리 언론계의 공통적인 문제다.

한국일보는 특히 삼풍백화점 사고와 관련해 각 건설업체가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어떻게 이번 사고의 교훈을 수집하고 정리하는가, 그리고 현장에서 인명구조활동에 참가하고 있는 사람들의 식사와 생필품 조달에는 어떠한 구조적 문제점이 있는가 등 다른 언론사에서 다루지 않는 부분들을 적절히 잘 취급했다. 현장취재기자들의 어려움은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개인생활의 보호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고, 큰 일이 날때마다 소홀하게 취급되는 경향이 있어 환기하는 차원에서 지적한다.

매주 월요일자 「소리」면에 게재하고 있는 「나의 지면평」 필진 일부가 교체됐습니다. 서울대 김성곤 교수대신 이화여대 이재경 교수가 새로 참여했습니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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