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더미속 “살려달라…”/「실낱같은 외침」 뒤 숨가쁜 2시간/나뭇가지 넣자 당겨 생존 확인/탈출로 뚫어 1시간만에 “만세”참혹한 건물잔해를 뚫고 새어나온 희미한 목소리가 극적인 구조까지 이어진 2시간여동안 삼풍백화점 현장주변은 긴박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잔해철거 및 시신발굴작업을 하던 구조대원들은 9일 상오 6시께 A동 중앙 지상3층 콘크리트상판 제거작업을 벌이다 오른쪽 팔만 보이는 50대 남자의 시신을 발견했다. 이때 도봉소방서 119구조대소속 김명완(30)소방사등 구조대원 2명은 시신주변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사람목소리를 들었다.
11일이 지났는데도 사람이 살아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사람목소리가 분명했다. 김씨등은 상판사이의 벌어진 틈과 구멍마다 랜턴을 비추며 20여분간을 찾아 헤맸지만 인기척은 더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잘못 들은 줄 알고 막 돌아서는 순간 시신으로부터 2가량 떨어진 지점에서 다시 『살려달라』는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상판이 시루떡처럼 차곡차곡 쌓인 콘크리트 상판 한켠의 어른 주먹 두개가 들어갈 만한 작은 구멍이었다. 구멍틈으로 나뭇가지를 조심스럽게 넣었더니 순간 잡아당기는 느낌이 왔다. 사람이 살아있었던 것이다. 김씨등은 랜턴을 비추며 『살아있으면 얼굴을 보여달라』고 외쳤다. 한손이 불쑥 어둠속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상오 6시30분께였다.
구조대원들이 『선생님 성함을 말해주십시오』라고 하자 『최명석입니다. 나이는 21살입니다』라는 작지만 또렷한 소리가 들려왔다. 구조대원과 최씨는 짧은 순간 숨가쁜 대화를 나눴다. 『생존자가 더있습니까』 『없습니다』 『다친데는 없습니까』 『다친데는 없는데 몸이 끼여있어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구조작업이 시작된 것은 7시20분께. 최군의 구조는 처음 발견한 도봉소방서 소속 구조대원 8명이 맡았다. 생존자를 확인했다는 기쁨속에서도 대원들의 등줄기엔 식은 땀이 계속 흘러내렸다. 71시간만에 구조됐다 숨진 이은영(21)양의 악몽이 떠나지 않았다.
최군이 묻혀있는 공간은 40㎝ 두께의 콘크리트 상판 밑으로 60㎝가량 더 내려간 곳이었다. 최군은 45㎜ 두께의 철근과 콘크리트 쇠파이프등이 뒤엉켜있는 길이 1가량의 공간에 발을 굽힌채 30도 각도로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구조대원들은 구멍 둘레에 가로세로 1×2의 구멍을 뚫기로 했다. 일단 구조대원이 입고있던 작업복을 구멍틈으로 넣어주며 『눈을 가리고 작업중 콘크리트 부스러기가 떨어지면 막으십시오』라고 소리쳤다.
절반정도 구멍을 뚫고 내려가자 옷으로 눈을 가린채 어둠속에 갇혀있던 최씨가 몹시 흥분한채 『살려달라』고 외치며 구멍을 빠져 나오려 몸부림쳤다. 구조대원들은 『진정하십시오. 곧 구조할겁니다. 지금 나오면 철근때문에 다칠지도 모릅니다』라며 안심시켰다.
구조대원들은 햄머드릴 3대, 산소절단기, 수동유압절단기등으로 구멍을 넓히면서 파내려갔다. 계속 말을 시키며 1시간 정도지났을 때 가로세로 60×1백20㎝의 구멍이 뚫리고 비좁은 공간에서 비스듬이 누워있는 최씨의 모습이 비로소 나타났다. 구조대원들은 주변의 철근과 쇠파이프, 콘크리트등을 헤집으며 담요로 최씨를 감싼채 끌어냈다. 생환의 환호성이 폐허현장을 가득 메웠다. 생존의 목소리를 들은지 정확히 2시간만이었다.<박진용·박일근 기자>박진용·박일근>
◎어떻게 살아남았나/에스컬레이터가 「생명의 보호막」… 낙천적 성격도 큰몫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었다. 콘크리트더미와 계속된 화재로 인한 유독가스등 도저히 살아 남기 힘든 최악의 상황에서 최명석(20)군이 열하루만에 건강하게 구조된 것은 기적적인 생존환경과 또래의 젊은이답지 않게 낙천적이고 강인한 그의 의지력 덕분이었다.
백화점 붕괴 당시 최군이 매몰된 장소는 최선의 생존조건이 갖추어진 곳이었다. 매몰지점은 A동 엘리베이터 타워옆 에스컬레이터밑. 에스컬레이터가 무너진 콘크리트더미를 막으면서 생긴 「기적의 삼각공간」은 최군을 살려주었다. 생명의 방어막역할을 해준 에스컬레이터 덕분에 머리 뒷부분과 오른쪽 팔꿈치에 1㎝가량 상처가 났을뿐 별다른 외상없이 멀쩡했다. 아무리 공간이 충분하더라도 중상을 입었다면 출혈이 계속돼 열하루를 버티기는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난 2일 매몰 71시간만에 구조됐다가 2시간후 숨진 이은영양처럼 사고초기 구조된 희생자 대부분이 중상으로 출혈이 심한 상태였다.
또 최군은 빗물과 화재진압용 물이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 사이로 스며들어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허기는 종이박스로 해결했다. 물에 불어난 종이박스는 허기뿐 아니라 수분도 공급해주었다. 종이박스에는 영양분이 전혀 없지만 건강한 20대인 최군에게는 체력유지에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런 조건을 갖추었다 해도 최군의 낙천적인 성격이 아니었다면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열하루동안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기 힘들었을 것이다.<권혁범 기자>권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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