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품에 안긴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5개월이 지났다. 나에게 서울 생활은 갓 걸음마를 시작한 어린애 같이 서툴다. 모든 것이 눈에 설고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다. 나는 생활에 쫓기면서도 가끔 현실을 외면한 채 고립돼 있는 고향하늘을 바라본다. 슬픔과 괴로움을 하소연할 수 없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이산가족의 설움이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뿐이다.나를 낳아주고 키워주신 부모님께 불효막심한 아들이지만 먼훗날 큰절을 올릴 날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때는 부모님은 물론 모든 북한동포들이 민주주의가 무엇이며 참된 자유가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북한이 진정한 국가이고 국민을 위한 정부라면 우선 인민들의 배고픈 설움부터 해결해 줘야 한다. 남한정부가 북한에 쌀을 무상으로 지원한다는 얘기를 듣고 나 뿐만이 아니라 모든 귀순자들은 정말로 무어라 감사의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내가 북한을 탈출한 92년 겨울에도 식량이 제대로 배급되지 않았다. 옥수수죽과 김장배추로 끼니를 때워야만 했다. 갓 해산한 산모가 쌀밥 한그릇 먹지 못해 젖이 나오지 않고, 이를 안타깝게 지켜보며 팔자를 탓하는 남편의 처량한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러나 어디 이게 팔자 탓인가.
북한당국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전쟁중의 어려웠던 시기를 생각하자고 말하고 있지만 도무지 귀에 들어오지 않는 소리다. 어려울 때 당에 대한 충성심이 있는지가 드러난다면서 혁명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외치고 있지만 공허할 뿐이다.
옛날 속담에 없는 놈이 큰소리 친다고 했는데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닌지 모르겠다.
북한은 지금 한국형경수로 원조와 쌀지원을 마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북한당국은 남한이 준 쌀을 받고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하고 있을 굶주린 인민들을 생각해야 한다. 한가롭게 잔꾀를 부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북한당국이 진정으로 인민을 위한다면 큰소리 그만 치고 남북대화에 응해야 한다.
북한정권은 김일성사망으로 세대가 바뀌었다. 언제까지 현실을 부정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있다는 사실을 북한당국자라고 해서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분단의 비극을 새 세대에 까지 연장시키지 말아야 한다.
나는 30평생을 주체사상과 오로지 김부자 외에는 진정한 영도자가 없다는 교육을 받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현실을 이와 전혀 달랐다.
북한당국은 더 이상 현실을 숨기지 말아야 한다.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대한민국에 와서 두군데 직장을 다니면서 사회가 무엇인지를 알았다. 그러면서 나도 이 사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조그마한 자부심도 갖게 되었다.
남한에서 배운 여러 경험들이 통일에 도움이 된다면 몇백밤이라도 꼬박 새울 각오가 돼 있다. 북한당국이 하루빨리 이같은 나의 조그만 정성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 뿐이다.
□약력
▲62년 평양시 보통강구역 출생(32세)
▲평남 성천고교 졸업
▲평양 무역선원간부학교 항해과 2년중퇴
▲중앙사로청 청년돌격대 산림참모
▲평남 성천 제사공장 선반공
▲하바로프스크 소재 임업대표부 운전수
▲벌목장 탈출, 모스크바에서 1년간 은신생활
▲94년 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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