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년 현백화점 부지 매입 100배 남는 장사/60년대 관급공사·70년대초 부동산 눈돌려삼풍백화점 이준(73) 회장의 축재는 부동산투기와 관련공무원들에 대한 로비가 없었더라면 거의 불가능했을 것으로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회장은 중앙정보부에서 근무하던 63년 「동경산업」이라는 개인회사를 별도로 설립, 미군에 납품하는 건설·전기공사업을 하면서 돈 사냥에 나섰다. 67년에는 아예 중정에서 나와 「동경산업」을 「삼풍건설산업」으로 이름을 바꾸고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중령으로 예편했던 그는 군과 중정의 인맥과 정보를 활용하면서 관급공사를 중심으로 토목 등 대형 플랜트와 주택건설, 관광조경 등에서 상당한 실적을 올렸다. 관유착, 비자금조성, 공무원들에 대한 로비는 이때부터 이미 삼풍의 주요한 사업수단으로 자리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풍이 시공했던 을지로 삼풍상가, 여의도 순복음교회, 주한미군가족주택, 청평화시장 등의 공사는 군소업체였던 당시의 삼풍으로서는 굵직한 공사였기 때문이다.
건설에서 부를 쌓은 이회장은 70년대 들어 부동산투자에 눈을 돌렸다. 74년 서울 서초동 현 삼풍백화점과 아파트 단지부지 5만7천평을 사들인게 가장 성공적인 부동산투자. 부동산업계에 의하면 당시 이 일대 땅은 평당 20만∼30만원. 현재 평당 2천5백만원을 훨씬호가하니까 앉아서 1백배이상의 돈을 벌어들인 셈이다. 삼풍은 「강남의 마지막 노른자위」였던 이곳에 삼풍아파트를 지어 큰 돈을 벌었다. 삼풍아파트는 86년 분양당시 최고 10대 1의 경쟁률을 보이는 등 숱한 화제를 뿌렸다.
삼풍은 서초동 땅 이외에도 전국 각지에서 돈이 될만한 부동산을 긁어모아 3만4천여평 규모의 제주 중문단지 소재 여미지식물원(1천억∼1천3백억원 추정) 등 현재 3천억원대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86년에는 코리아게이트로 물의를 빚은 박동선씨로부터 숭의학원을 인수하기도 했다.
삼풍백화점 건설과정은 특히 삼풍의 탐욕을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 설계변경가사용준공검사계속된 증축은 물론이고 89년 우성건설로부터 당시 삼풍건설산업(주) 도급한도액의 7배가 넘는 대공사를 떠맡았던 것이다. 삼풍은 자신의 공사를 자신이 맡아 불과 2년만에 도급순위 49위(도급한도액 2백54억원)의 중견건설업체로 성장했다.<서사봉 기자>서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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