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유씨 “남편이어 또 딸마저…” 실신/견딜수없는 고통 오빠·남동생도 넋잃어『너마저 이렇게 가다니…』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실종됐던 딸이 지금이라도 환하게 웃으며 대문으로 들어설 것이라는 희망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던 유수경(54·국민대가정교육학) 교수는 차마 딸의 시신이 안치된 병원에 갈 수 없었다. 딸의 차디찬 시신은 지난 12년간의 처절한 인내를 결국 무너뜨리고 말았다.
유교수의 딸 서이영(27)씨는 지난 83년 10월 아웅산사건으로 순국한 서석준 당시 경제기획원장관 겸 부총리의 외동딸. 이영씨의 시신은 붕괴참사 10일째인 8일 낮 12시께 백화점 3층 콘크리트 더미 속에서 발견됐다.
유교수의 지난 10일은 인고의 지난 세월 이상이었다. 그는 학술대회 참석차 캐나다로 떠난 다음날인 지난달 29일 TV로 사고소식을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가 딸의 실종소식을 들은 유교수는 곧바로 귀국했다.
유교수를 버티게한 것은 『너마저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는 믿음과 기다림 뿐이었다. 한시도 집을 비우지 않고 딸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오빠 익호(30·하버드대 박사과정)씨와 남동생 익재(23·군복무중)씨는 그동안 친구들과 함께 사고현장과 병원을 뒤지며 누이의 소식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전가족의 실낱같은 희망은 10일만에 결국 절망으로 바뀌었다.
연세대를 졸업한 이영씨는 지난 93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하버드대에서 심리학 석사과정을 마친후 올봄 귀국, 대학에서 강의를 해왔다. 이영씨는 사고당시 서울교대 부근으로 친구를 만나러 외출했다가 앨범을 사러 백화점에 들른게 마지막 길이 되고 말았다.
비내리는 병원 영안실에는 아버지에 이어 누이마저 이별한 오빠와 동생이 말을 잃고 빈소를 지켰고 서전부총리와 함께 재직했던 재경원 공무원들이 찾아와 유족들을 위로했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이영씨는 영원히 부녀가 함께할 길로 떠나고 말았다.<권혁범 기자>권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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