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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설계변경 과장→구청장 직보/「삼풍」 설계·변경·준공까지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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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설계변경 과장→구청장 직보/「삼풍」 설계·변경·준공까지 과정

입력
1995.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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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결재과정 생략 “봐주기” 의혹/건축허가는 87년 서울시서/90년 가사용 이충우 구청장때 승인나/준공 황철민씨 용도변경 조남호씨때삼풍백화점 붕괴참사의 수사방향이 「재―관」유착비리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삼풍백화점의 건축허가에서부터 잦은 설계변경 사용검사 용도변경에 대한 승인이 담당공무원의 어느선에서 이루어졌고 보고됐느냐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삼풍부지는 86년까지 아파트 부지였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곳을 중심지구 판매시설로 지정한뒤 87년 7월18일 건축허가를 내줬다. 이때부터 서울시 내부에서 특혜소문이 돌았다.

당시 담당직원은 서울시 주택기획과의 양주환씨였으며 건설관리국장인 우명규 전 서울시장이 결재했다.

도·소매업진흥법상 백화점건설에는 건설허가전에 백화점개설 내인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서울시는 내인가도 승인하기 전에 건설허가를 했다가 88년12월5일 당시 김진원 부시장을 위원장으로 도·소매업진흥심의위원회를 열어 백화점내인가를 해줬다. 앞뒤가 뒤바뀐 것이다.

88년 건축허가와 설계변경 허가·승인권은 구청으로 위임됐다. 삼풍백화점의 세차례에 걸친 설계변경등은 모두 관할 서초구청이 담당하게 된 것이다.

구청 「위임전결 사항」에 의하면 11층 이상 또는 연면적 6천6백㎡이상의 건물에 대한 건축허가등 주요사항변경은 구청장이, 내부구조등 경미한 사항변경은 담당국장이 결재하게 돼 있다.

그러나 지난 5일 구속된 정지환씨가 검경에서 진술한바에 의하면 삼풍백화점관련 대부분의 사항은 서초구청 주택과장이 결재선인 도시정비국장을 제치고 구청장에게 직보한 것으로 드러났다.

89년 11월 백화점의 1차 설계변경 당시 서초구청 주택과 담당직원은 정씨였으며 계장은 양주환씨, 주택과장은 김영권씨, 도시정비국장은 이승구씨, 구청장은 이충우씨였다.

서울시청 주택기획과에서 삼풍백화점 건축허가 때부터 관여했던 정·양·김씨등 3인방이 서초구청 주택과의 직원과 계장 과장으로 자리를 옮겨 1차 불법설계변경도 담당한 것이다.

2차(90년3월9일) 3차(90년4월24일)의 설계변경및 가사용승인도 1차와 같이 정씨후임인 김오성씨를 거쳐 계장―과장―구청장으로 연결되는 선상에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삼풍백화점은 87년7월 판매시설 1만9천9백50㎡로 건축허가를 받아낸뒤 3차례 설계변경을 통해 2천69㎡를 확장, 90년7월 서초구청으로부터 준공검사를 얻었다.

준공검사승인은 실무담당인 곽영구씨와 양계장을 거쳐 김과장이 직접 황철민 구청장에게 결재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임채근(현 서울시 재무국회계과장) 도시정비국장은 결재 당일 하오에 부임해 결재과정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검경수사결과 확인됐다.

삼풍백화점은 또 지난해 8월 지하 1층을 용도변경, 판매시설을 6백70㎡ 증축확장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용도변경승인은 담당직원인 이명수(현 교통운수계장) 정경수(주택과)씨를 걸쳐 이종훈(현 청소과장)계장―김재근(현 방배3동장)과장―심수섭 도시정비국장―조남호 구청장 선상에서 이루어졌다.<박희정·정진황 기자>

◎실종자 가족들 표정/“생존가능성 희박” 갈수록 체념/제대로 못자고 못먹어 지칠대로 지쳐

○…서울교대 체육관에 모여있는 실종자 가족들은 구조 9일째에 접어들자 실종 가족의 생존가능성에 대해 거의 체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가족들은 날이 더워 발굴된 시신이 몹시 부패해 알아보기 힘들다는 소식에다, 장마마저 닥칠 것으로 예상되자 시신을 찾는 것은 고사하고 찾아도 신원확인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무척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가족들은 특히 신원미상의 시신이 발굴됐다는 공고가 체육관 벽에 나붙을 때마다 대책본부 접수창구에 달려와 『신체적 특징이 무엇이냐』 『삐삐를 차고 있었느냐』 『와이셔츠 차림이었느냐』고 묻는등 구조작업의 진척과 시신발굴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실종자 가족 10여명은 7일 상오 7시30분께 서울시대책본부를 찾아와 이날 상오 6시40분 A동 지하3층에서 발굴된 시신이 무리한 작업으로 인해 심하게 훼손됐다며 강력히 항의했다. 이들은 『무리한 포클레인 작업으로 다리 일부만 발굴되는등 시신 훼손이 심각하다』며 시신발굴에 신중을 기해줄 것을 요구했다.

대책본부는 이에 대해 『시신과 콘크리트더미가 엉켜있어 작업에 어려움이 많다』면서 『야간작업시 포클레인 부근에 구조대원을 상주시키고 조명차 6대를 배치하겠다』고 해명했다.<박진용 기자>

◎“악덕상혼이 내딸 죽였습니다”/B동서 근무 이희연양 아버지 오열/붕괴조짐 미리 안 간부들 지시따라/A동 고가물품 밖으로 옮기다 참변

『악덕상혼이 내딸을 죽였습니다. 내딸의 목숨보다 돈이 귀중했던 나쁜 사람들입니다』

6일 하오 이우석(59·서울 강남구 대치동)씨는 삼풍백화점 잔해더미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돼 강남성모병원 영안실로 옮겨진 둘째딸 희연(25)씨의 영정을 부여안고 『내딸을 살려내라』며 오열했다.

틀림없이 살아있어야 할 딸이 백화점간부들 때문에 죽고 만 것이다.

이씨는 삼풍백화점 붕괴소식을 사고발생 30분 뒤에 처음 들었다. 깜짝 놀라 TV에 다가섰던 이씨는 붕괴된 건물이 백화점 A동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곧 안도했다. 딸이 디자이너로 근무하는 삼풍백화점 상품기획실은 B동 3층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모진 운명은 끝내 아버지와 딸을 영원히 갈라 놓았다. 이씨는 희생자유족들이 모여있는 서울교대에서 불길한 예감을 애써 떨쳐 버리며 구조소식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이날 대책본부로부터 시신확인통보를 받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충격을 받았다.

사고 당시 이양은 A동 3층에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건물붕괴조짐이 보이자 백화점측이 하오 5시께 A동에 전시된 유럽제 고가의 유리제품을 밖으로 옮기라는 매정한 지시를 이양에게 내렸던 것이다. 회사측의 지시로 동료 3∼4명과 A동으로 갔던 이양은 결국 꽃다운 나이에 콘크리트 더미에 묻히고 말았다.

명랑하고 상냥한 성격의 이양은 가족모두의 세심한 곳까지 일일이 신경을 쓰는 다정다감한 딸이었다. 어머니 박영옥(·54)씨가 백화점붕괴 1주일전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하자 밤새워 간호를 하고 직장에 나가면서도 피곤한 내색을 하지 않았다. 사고 당일에는 중국에서 귀국한 언니 윤주(26)씨와 8개월된 조카에게 선물로 줄 옷가지를 가지런히 포장해 책상밑에 놓아두고 언니에게 전화한 것이 가족과 마지막 통화였다.<조철환 기자>

◎“아르바이트로 효도 한다더니…”/한양대 미술대학 수석입학 강민경양/어머니에 사준 옷값위해 일하다 숨져

『딸한테 무슨 호강을 바라겠다고…』

올해 한양대 공예학과에 미술대 수석으로 입학한 강민경(20·경기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양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강남성모병원 영안실. 실종된지 8일만인 6일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 딸의 영정 앞에서 어머니 송정자(50)씨는 「못난 에미」를 탓하며 오열하고 있었다.

강양은 2개월전 어머니를 모시고 삼풍백화점으로 가 막무가내로 투피스 2벌을 사 안겨드렸다.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어머니는 만류했지만 강양은 『월부로 구입한 다음에 제가 아르바이트를 해 갚으면 돼요』라며 고집을 부렸다. 강양은 방학이 시작되자 삼풍백화점 1층 잡화부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사고가 나기 불과 이틀 전이었다.

강양은 대영고에서도 항상 수석을 다툰 수재였다. 수능시험 성적이 우수했지만 집안의 경제적 형편을 고려해 『장학금을 받고 다니겠다』며 한양대에 응시, 단과대 수석을 차지했다.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컴퓨터 자수를 하고 있는 아버지 강희연(49)씨는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해 말렸으나 교수님이 추천해 주셨다고 떼를 써 허락했더니…』라며 『나중에 알고보니 그 녀석이 내 허락을 받아내려고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강양의 언니 은경(23·청주대 무용4)양은 『사고가 난 날 아침에 민경이가 힘들다고 해 쉬라고 했는데도 내가 쉬면 남이 고생한다며 핸드백을 들고 나갔다』며 그때 더 말리지 못한 걸 원통해했다.

강양의 유해는 한학기 동안이나마 정들었던 한양대 안산캠퍼스로 옮겨져 학우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노제를 치른 뒤 장지로 떠날 예정이다.<박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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