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가 되어버린 천재/우리현실에 대한 논평… 풍자는 미흡 대형사고들이 조심스럽게 삶의 수맥을 더듬던 우리의 촉수를 앗아갔고 일상에서의 의미찾기는 이제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어간다. 이 소란스런 세상에 이장호감독이 「천재선언」으로 돌아왔다.
그의 천사(김명곤)는 동강난 성수대교 아래서 하 수상한 이 세상을 고민하다 자신의 신통력을 무기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뒤떨어진 정치와 영화계를 바꿔보기로 한다. 그리곤 천사와 속인의 한바탕 블랙코미디를 펼친다.
「바보선언」(83년) 이후 12년만에 90년대에 대한 논평형식으로 만들어진 이영화의 전반부는 상당히 흥미롭다. 인물들의 빠른 움직임은 경쾌하며 「수상한 소리」나 「알 수 없는 눈물」과 같은 인물설정은 재치있고, 국회의사당앞 정치인들의 기마전 소극은 통쾌하다.
지배층 남성문화를 비꼬는 장면도 신랄하다. 오리걸음으로 조깅하고 사우나 가고 요정에 들락거리는 이들은 우스꽝스런 제꼴도 모른 채 영웅호걸인양 허풍을 떨어댄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재미는 예측 가능하고 풍자는 자살 일보 직전이고 정치와 영화에 대한 개입은 『너희들 나빠』라고 질타하는 수준에 멈춘다. 관객에게 주어지는 것도 정치꾼 악마들은 지옥에 가고 참회한 영화인들은 그후로 행복하게 산다는 간편한 이분법적 교훈이다.
우리 모두, 적어도 30대 이후는 「바람불어 좋은 날」과 「바보선언」을 통해 80년대의 영화계를 진두 지휘한 이장호감독의 귀환을 기다려 왔다. 시대적 감수성에 자극적으로 반응하는, 하여 「즉흥성의 미학」이라고 부를만한 그의 영화들의 현장감이 90년대에도 이어지길 희망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성수대교를 제외한다면 95년의 현장과 그리 가까워 보이지 않는다. 누구나 인정하다시피 이제 세상은 더욱 복잡하고 그래서 단순화한 풍자의 세계는 고답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한국영화에 애정을 갖고있는 관객이라면 「천재선언」을 마음편히 비판하지 못할 것이다. 박제가 돼버린 천재를 만든 것이 어디 한 영화감독의 책임이랴.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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