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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장 출구조사 허용이냐 금지냐

입력
1995.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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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4대 지방선거 투표가 마감되자마자 문화방송(MBC)이 기습적으로 발표해 화제를 불러일으킨 선거결과 예측보도에 대해 아직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MBC측은 투표를 마치고 귀가한 유권자를 상대로 한 여론조사라고 말하지만 이는 사실상의 투표장 출구조사(EXIT POLL)다. 문제의 발단은 현행 선거법(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이 투표장 출구조사를 금한데서 비롯된다. 현행 선거법은 아무도 투표 마감시간까지 누구를 찍었는지 물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당선자를 예상하게 하는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하거나 인용하여 보도할 수 없다는 규정도 있다. 투표장 출구조사라는 명문규정은 없으나 이를 금지한 것은 분명하다.◎선거법 명문규정 없으나 포괄적 “금지”/MBC보도 큰 반향… 허용론 적극 대두

선관위는 MBC보도가 나가자 즉시 위원 전체회의를 소집해 이를 위법으로 규정하고 시정을 촉구했다.

그러나 MBC의 개표결과 예상보도는 개표가 채 시작되기도 전에 선거 판세(민자5 민주4 자민련4 무소속2)를 정확히 예측했고, TV를 지켜보던 많은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일찍 해소시켜주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MBC 보도에 대한 논쟁은 결국 투표장출구조사 허용여부에 관한 논쟁이 될 수밖에 없다. 반대론자들은 현행선거법을 그대로 두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찬성론자들은 차제에 선거법을 개정해서라도 이를 허용해야 한다는 적극론을 펴고 있다.<이병규 기자>

◎허용론/고진 MBC선거방송 기획단장/대의정치 확대로 선거일상화/개표방송 보며 밤새는 시절 지나/투표자조사 도입 시대적 당위

우리가 정치체제로서 추구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는 대의정치의 결과물이다. 대의정치는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하는 공직자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고양된다. 지금 우리 사회가 나아가는 정치사적 흐름은 대의정치의 확대와 지방분권화로 축약된다. 그런데 이같은 대의정치의 확대는 필연적으로 선거를 일상화한다.

지사와 시장, 연방의원과 주의원은 물론 경찰서장, 교육감, 각급 검찰 책임자, 심지어 자동차 등록소장도 선거로 뽑는 미국에서 선거와 투표행위는 일상생활의 일부이다. 자치가 확대되고 대의정치가 만개한 사회에서 선거의 일상화는 필연적인 추세이다.

우리 사회는 선거가 일상화하는 대의정치의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따라서 선거를 바라보는 시각과 선거를 다루는 방식 전반에 대한 일대변화가 있어야 한다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6·27 선거 개표방송에서 MBC가 도입한 투표자조사는 충분한 당위성과 객관적 타당성을 가지고 있으며, 대다수 시청자들의 호응을 받았다.

지난달 27일의 지방선거는 21세기의 초입까지 우리가 거의 매년 치러야 할 줄지은 선거의 시작일 뿐이다. 우리에게 선거는 4∼5년에 한번씩 찾아오는 한풀이 정치행사가 아니라 일상지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판이 소용돌이 치고 권력자들의 성쇠가 눈앞에 펼쳐지는 모습을 음미하면서 개표방송으로 밤을 지새우던 시절도 지나갔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수시로 벌어지는 정치행위의 결과를 과학적으로 미리 알 수 있는 검증된 방법을 외면하고 궁금증을 즐기면서 개표 레이스를 지켜봐야할 이유가 과연 있는 것인가.

문화방송이 27일 저녁 개표방송의 벽두에 『시청자 여러분을 일찍 주무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한 것이 세간에 화제가 되면서 호응을 받았던 것은 밤을 지새우는 개표방송이 더 이상 국민정서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반증이라고 본다. 사실 다소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진 MBC의 투표자조사에 대한 국민의 반응을 다시 조사해 본 결과 압도적 다수가 투표자조사에 긍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음이 확인됐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대다수 선진국에서 관행화한 투표장출구조사(EXIT POLL)의 변형된 형식인 투표자조사에 대해 반대론을 펴는 이들이 주로 논리적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투표의 비밀이 보장돼야 한다」는 원칙론적인 명제다. 다시 말해 투표자조사는 투표의 4대 원칙인 보통·평등·직접·비밀의 원칙중 하나를 위반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투표의 비밀이 보장돼야한다는 헌법적 규정은 유권자가 자신이 지지한 후보나 의사표출한 정치적 견해를 자신의 의사에 반해 밝히지 않을 기본권이 보장된다는 뜻임은 상식에 속한다. 도대체 문명국가의 어느 여론조사가 조사대상자의 뜻에 반해 견해를 공개하라고 강제할 수 있단 말인가.

반대론을 펴는 이들은 또 문화방송이 실시한 투표자 여론조사가 통합선거법 제167조 규정을 위반했다고 주장한다. 같은 조 2항은 「선거인은 투표한 후보자의 성명이나 정당명을 누구에게도 또한 어떠한 경우에도 진술할 의무가 없으며, 누구든지 선거일의 투표마감시각까지 이를 질문하거나 그 진술을 요구할 수 없다」고 씌어져 있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같은 조항은 전후의 관련조항들과의 연관속에서 해석돼야 마땅하다는게 법률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선거법 제167조는 투표소의 질서유지를 규정한 제164조나 소란언동 금지를 규정한 제166조등과 관련지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즉 제167조의 취지는 특정 정당이나 국가기관등이 투표가 완료되기 전에 투표소 인근에서 위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투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화방송이 사전에 확인한 결과 통합선거법 협상에 참여했던 법조인 출신 여야의원들도 우리와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법의 해석상에 논란이 있을 경우 입법취지도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법규정이 해석상의 논란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어 정치권에서 관련 조항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 하겠다. 출구조사를 통해 투표마감과 동시에 당선 예상자를 공개하는 것이 제도로 정착된 선진 민주국가들의 예를 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투표자조사가 도입되어야 한다는 당위는 명백하다고 본다.

◎금지론/김호열 중앙선관위 지도과장/언론·정당 등 경쟁적 조사땐/투표의 비밀 보장 어려워/실제개표와 다를땐 혼란 우려

지난달 27일 지자제선거 당일 투표 마감시각 직후 MBC가 투표를 마친 유권자를 대상으로 어느 후보자에게 투표했는가를 전화조사해 결과를 보도했다.

중앙선관위가 이러한 행위가 통합선거법에 위반된다고 지적하자 MBC측에서는 조사전에 통합선거법 입법과정에 참여했던 여야의원과 관련학자들의 말을 빌려 위법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과연 어느쪽 해석이 타당한가. MBC측의 조사와 관련이 있는 통합선거법상의 조문은 2개이다. 하나는 누구든지 선거기간 개시일부터 선거일의 투표마감 시각까지 당선인을 예상하게 하는 여론조사의 결과를 공표하거나 인용보도할 수 없다고 규정한 제108조(여론조사의 결과공표금지) 제1항의 규정이고, 다른 하나는 누구든지 선거일의 투표마감시각까지 투표한 후보자의 성명이나 정당명을 질문하거나 그 진술을 요구할 수 없다는 제167조(투표의 비밀보장) 제2항규정이다. 이를 어겼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제241조(투표의 비밀침해죄) 제1항도 있다.

그런데 MBC는 제167조가 첫째로 유권자의 투표내용 비밀보장을 위한 것이고, 둘째로 투표마감 시각이전 투표 진행중에 투표소 부근에서 『어느 후보자가 현재 어느 후보자보다 유리하다』는 소문을 퍼뜨림으로써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막기 위한 규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조항은 여론조사를 금지하는 조항이 아니라 헌법의 비밀선거 정신을 적극 반영해 유권자의 투표내용 비밀보장을 위한 것일 뿐이므로 출구조사가 아닌 전화조사는 제167조의 위반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제167조는 이번 통합선거법에서 신설된 조항이 아니다.

이 조항은 1950년 국회의원선거법을 제정하면서 최초로 도입한 이래 지금까지 계속 존치돼오고 있다. 통합선거법을 제정할 때 MBC측이 조사한 것과 같은 조사행위는 허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있어 민자당과 선관위는 제167조제2항 본문 다음에 『…다만, 여론조사 기관이나 학술 연구단체가 여론조사를 위해 이를 질문하거나 그 질문에 대해 자유의사에 따라 진술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는 단서를 두는 통합선거법시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여야협상과정에서 이 단서 규정은 결국 채택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투표당일, 투표한 사람을 모든 언론기관 학술단체 정당 후보자측이 경쟁적으로 조사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투표의 비밀이 보장되기 어렵다는 점 때문이었다. 투표를 마친 사람을 대상으로 누구에게 투표했는 지를 조사해 나온 결과와 실제로 투표함을 열어 나온 결과가 근소한 차로 뒤바뀔 경우 개표당일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 있을 선거운동원이나 후보자측에 의해 투·개표조작이라는 유언비어가 나돌아 자칫 개표장이 아수라장이 될 것이라는 점도 고려되었다. 투·개표 조작이라는 시비가 일 경우 선거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사태까지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선진국에서는 자유롭게 출구조사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나라는 우리나라 선거법의 제167조와 같은 규정이 없다. 다만 우리나라 선거법 제167조와 비슷한 조항을 가지고 있는 일본에서는 최고재판소가 『투표한 후보자가 누구인가가 당해 선거에 있어서의 공소사실의 내용을 이루고 있어 이에 대한 진술이 절대 필요한 경우 외에 판사가 피고인 또는 증인에 대하여 투표한 후보자의 성명의 진술을 요구할 때에는 본 조의 범죄를 구성한다. 다만, 선거인이 투표한 후보자가 누구인가가 당해 공소사실의 내용을 이루고 조사를 절대 필요로 하는 경우에 한하여 범죄성립을 저각함에 지나지 않는다』고 판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검에서도 매수되어 한 투표라도 그 조사에 있어서 투표한 후보자에 대한 진술을 요구할 때에는 본 죄가 성립되고, 선거범죄의 수사 또는 공판에 있어서 판사 검사 경찰관이라 할지라도 후보자의 표시를 요구하는 행위는 투표비밀 침해에 해당한다고 해석해 왔다.

투표한 후보자의 성명을 질문하는 행위 자체가 금지되고 있으므로 여론조사를 위한 방송사의 전화질문도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규정이 없는 한 당연히 위법한 행위가 된다. 출구조사가 아닌 전화조사는 가능하다는 방송사의 주장은 선거법의 내용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데서 비롯된 오해라고 생각된다.

MBC측의 주장대로 법 개정을 전향적으로 검토하는 것은 바람직 할지 모른다.그러나 현행법은 지켜져야 한다. 현행선거법에 사문화된 조항이 있는 것같은 법해석이 또 다시 있어서는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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