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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공화국」의 법과 정치/최종고(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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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공화국」의 법과 정치/최종고(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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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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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됨됨이는 궁핍할 때 알고 국가의 성숙도는 재난을 당했을 때 나타난다. 삼풍백화점 붕괴참사는 성수대교 붕괴사고, 아현동 가스폭발사고, 대구지하철 가스폭발사고의 뒤처리와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또 터진 연발사건으로 「대한민국은 사고공화국」이라 불러도 변명할 수 없게 되었다.사고가 날 때마다 대통령과 총리는 안전대책을 다짐했고, 지난번 대구사건이후 「안전문화추진중앙협의회」를 발족시킨 것으로 안다. 이러한 「안전문화」라는 슬로건을 비웃기라도 하듯 수도 한복판의 가장 호화로운 백화점이 폭삭 무너져 내려앉은 것이다. 안전문화를 어떻게 추진해 왔기에 이런 총체적 부실의 업보가 또 터졌단 말인가?

이런 정도의 개탄과 울분은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자연스런 감정일테지만, 생각해볼수록 사고는 취약한 곳에서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삼풍사건이 보여준 극명한 현상은 민과 관의 대조적 태도이다. 물론 민·관·군이 합동으로 구조작업을 벌이고, 신·구시장과 총리가 애를 썼지만, 여전히 관은 허점을 보이고 권위적으로 비쳐졌다. 무엇보다 자발적으로 구조작업에 참여하려는 민의 뜻을 적절히 일사불란하게 수렴, 지휘하지 못하였던 점이 드러났다. 이번 사태를 면밀히 분석하여 백서가 나와 반성의 거울로 삼아야겠기에 여기서 간단히 언급할 수는 없겠지만, 긍정적이고 고무적인 면보다 부끄럽고 용납못할 일들이 더 많은 것같다. 정부는 재난관리체계를 재검토하겠다니 또 한번 믿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사고를 뒤처리하는 법적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당장 소유주 이씨일가에 대한 기소과정에서 검찰의 「미필적 고의」가 아닌 「인식있는 과실」에 의한 과실치사상죄 적용에 대해 국민의 법감정이 저항하고 있다. 또 행정감독의 책임이 있는 공무원이 잠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들은 이런 엄청난 사건을 당하고도 누구 하나 책임을 물을 수 없는 분위기가 결국 또 다른 사고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고 불안해 하고 있다. 여기에서 「사고공화국」의 법의 번지수를 적나라하게 본다.

사실 대형사고가 난다는 것은 법과 원칙에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이요, 질서와 안전의식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법체계가 복잡한 가운데 가장 혼미스런 것이 건설관계법이다. 복잡하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재주껏 탈법을 할 수 있는 여지도 많다. 외국인이 「광란의 경제」, 「프랑켄슈타인경제」라고 부르는 그 경제건설을 위해 법은 수단이 되어 왔고, 정책의 시녀가 되어 왔던 것이다.

이것을 양식있는 지식인들이 걱정하여 지적하였고, 문민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개혁」의 과제가 여기에 있었다. 사실 김영삼대통령이 「한국병」을 뿌리뽑아야 한다고 부르짖었을 때 국민은 그런 기대를 걸었던 것이다.

여기서 굳이 현정부의 잘잘못을 거론하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미 6·27 선거로 중간평가가 났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이 6·27의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시점에서 삼풍사건이 터진 것이다. 뒤늦게 정부여당은 민심의 이반을 깨달았다고 수긍하는 기미를 보이고 있는데, 지금부터라도 민심을 수습하기 위하여는 참으로 겸허하게 반성하여 정신차려야 한다.

대통령이나 정부여당의 「개혁」구호가 왜 국민의 심층에 착근되지 못하는가를 개탄하기보다도 그 집행과정이 어떻게 잘못되었는가를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옛날에도 천재지변이 있으면 임금은 정치에 무슨 잘못이 있었느냐고 신하들로 하여금 직언하게 하였다. 청와대 비서진이 있고, 각 장관들이 있는데 무엇이 잘못되어 민심이 돌아섰는가를 지금부터라도 대통령은 깊이 경청하여야 할 것이다. 대통령은 누구의 소리든 들어야만 한다. 문민대통령이 왜 굳이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잇따른 재난은 우리에게 아픈 불행이지만, 이것을 겸허한 자세로 받아들이면 정치와 법, 국민생활에 엄숙한 교훈으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국민은 정말 어려운 국난에는 뭉쳐온 현명한 국민이다. 정치가 공연히 지역주의니 인맥이니 하여 갈가리 찢어놓았을 뿐이다.

우리는 지금의 재난과 불행을 우리 모두의 탓으로 받아들이고, 대통령도 정부도 경제인도 법률가도 깊이 반성한다면 반드시 불행으로만 그치지는 아니할 것으로 믿는다.<서울대교수·법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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