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차기 태 총리 확실 반한 차트타이 당수(뉴스 메이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차기 태 총리 확실 반한 차트타이 당수(뉴스 메이커)

입력
1995.07.04 00:00
0 0

◎「반부패」 공약으로 총선서 승리/결단력 뛰어나 「리틀 등소평」 별명도태국국민들이 야당지도자인 반한 실라파 아차(63)를 선택한 것은 「변화없는 안정」보다 「과감한 개혁」을 원했기때문이다. 3파전양상으로 혼전을 거듭하던 태국총선은 결국 반한이 주도하는 최대 야당 차트 타이(태국국민)당의 승리로 결판났다.

차트 타이당이 추안 리크파이 총리가 이끄는 민주당은 물론 억만장자출신 탁신 시나와트라 전외무장관이 이끄는 팔랑 탐(진리의 힘)당을 물리치고 「제1당」으로 부상한 것이다.

차트 타이당은 비록 과반수의석(1백96석) 확보에는 실패했지만 6개 정당으로 구성된 연정구성에 성공함으로써 야권중심의 차기정권을 출범시키게 됐다.

차트 타이당의 승인은 한마디로 추안 정권의 무기력과 부패스캔들에대한 국민의 뿌리깊은 염증에서 출발됐다. 차트 타이당의 수권능력에 대해 국민들이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다기보다는 현정권에대한 불만이 차트 타이당의 승리로 귀결됐다는 분석이다. 흔들리는 민심을 꿰뚫은 반한 차트 타이당 당수의 회심의 승부수는 바로 「반부패」공약이었다. 추안정권하에서 터진 토지개혁 스캔들을 끈질기게 물고늘어지면서 과감한 정치개혁을 국민에게 약속한 것이다.

사실 이번 총선의 핵심쟁점인 토지개혁 부정사건은 추안 총리에게는 더할 수 없는 악재였다. 추안 총리가 지난 92년 9월취임이후 빈민구제차원에서 단행한 토지재분배과정에서 민주당원들에 대한 토지특혜분배사실이 밝혀지자 추안총리에 대한 국민의 배신감은 증폭될 수 밖에 없었다.

용모가 중국 최고지도자 덩샤오핑(등소평)과 비슷해 「리틀 덩」이라는 별명을 지닌 반한은 태국 정·관계를 주름잡아온 관운좋은 정계거물이다. 지난 74년 임명직인 국가행정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이후 한차례 상원의원과 6차례 하원의원직에 당선되면서 교통체신부장관을 두차례 역임하는등 일곱차례나 장관을 지냈다. 그가 장관직을 지낸 부만 농업부, 교체부, 총리실, 공업부, 내무부, 재무부등 6개에 달할 정도로 풍부한 행정경험이 돋보인다.

특히 차티 차이총리정권시절이던 지난 90년당시 내무장관직을 수행했던 반한이 환락가를 암행한 에피소드는 국민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돼 있다. 장관초임시절인 어느날 저녁 가발과 가짜수염을 달고 환락가인 방콕의 「팟퐁」을 방문해 음란쇼를 벌이던 무희들과 악수를 나누며 에이즈에 주의할 것을 당부, 「인간성 넘치는 장관」이라는 평가를 얻기도했다.

중국계 부모사이에서 태어난 반한은 또한 만학도로도 유명하다. 아버지의 건축업을 돕기위해 17세때 학업을 중단했던 그는 54세때인 지난 86년 하원의원 신분으로 랑캄행개방대학의 법학과를 졸업했다.

온화한 성품으로 정평이난 그이지만 정치적 결단에서는 매서운 면을 갖고있다. 줄곧 장관직을 역임해오다가 작년 2월 야당인 차트 타이당수로 과감히 변신을 선택한 것도 총리직을 향한 자신의 야망을 실현시키기 위한 그의 결단이었다는 게 주위의 분석이다.<이상원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