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백화점 붕괴 참사의 닷새째를 맞으면서 곰곰 다시 생각해 보면 우리가 놀란 것은 두가지다. 하나는 설마했던 인재형 대형사고가 성수대교붕괴·대구 가스폭발사고등의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발생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같은 대형사고가 수차례나 발생한 이후에도 재난에 대처하는 정부의 대응태세가 이전보다 나아진 점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난맥상을 보였다는 것이다.뿌리깊은 건설업계의 비리와 부실공사행태가 그토록 잦은 자정결의에도 불구하고 고쳐지지 않는 것은 별개로 하고, 안전사고 예방 및 대처에 범정부적으로 총력을 기울이겠다던 정부의 결연한 대국민 다짐이 공허한 구호에 지나지 않았음을 이번 삼풍백화점 사고를 통해 확인할 때 국민은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을 일차 책임으로 하며 특히 이같은 긴급재난이 닥쳤을 때 국민을 즉각 안심시키고 구출해 내기위해 있는 것으로 우리는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고를 보고 우리는 우리를 보호해 줄 국가의 존재성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더욱이 수십여년간의 권위주의 통치하에서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이 국가로부터 감시받고 통제받던 경험을 떠올릴 때 이같은 국가기능의 부재를 도저히 현실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이른바 문민정권이 들어서면서 작은 정부, 불간섭적인 정부가 이념적으로 찬양되고 광범위한 규제완화등 이를 뒷받침하는 조치들이 실제로 취해졌다. 수십여년간의 권위주의 통치에 염증을 느낀 국민은 이러한 변화를 반사적으로 환영했다. 그러나 문제는 시민생활에 대한 국가의 불필요한 간섭이 줄어드는 것 이상으로 국가의 정상적 기능과 역할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 국민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데에 있다.
이번 삼풍백화점 참사를 둘러싸고 이 느낌이 확신으로 바뀌게 된다. 그동안 정부에 떠밀려 살아온 타성을 지닌 시민들은 이같은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준비가 채 되어있지 못하다.
대형재난의 예방과 대처는 국가의 최우선적 공공사업(PUBLIC WORK)이며 이는 개인적 이윤추구 행위의 대상으로 민영화시킬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이 사업이 제대로 수행될 때에만 국민은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주는 국가의 존재를 확인하여 안심하고 일상생활에 임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한 경우 국민은 선원만 탈출한 폭풍우속의 난파선에서 공포에 떨고 있는 승객의 처지가 된다. 이같은 점을 제대로 인식한 근본적 대책마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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