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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참사와 인공기충격(화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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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참사와 인공기충격(화요세평)

입력
1995.07.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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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삼풍백화점 붕괴현장에는 수많은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콘크리트더미속에 묻혀 있다. 이 상황에서 남의 일처럼 개탄만 하거나 한가하게 원인을 따지고 있을 때가 결코 아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나 끔찍스럽고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고 있다. 누구를 원망할 일도 아니건만 천편일률의 정부나 정당들의 담화도 이제는 듣기조차 싫다. 사직당국이 수사를 한다느니, 재산손실이 얼마이고 얼마의 피해보상을 한다는등의 보도에 오히려 분노같은 것을 느낀다.오직 우리의 국운을 탓할 수 밖에 없다. 정신을 가다듬어 보면 한편 창피하기 그지없다. 어찌하여 우리들은 거듭하여 이러한 불행만을 겪어야 하는 것인지 하늘이 원망스럽고 땅을 치고도 분통이 가라앉지 않는다. 비록 우리가 물질적으로 다소 풍요해졌다고 거들먹대면서 선진국에 진입한다고 지각없이 무지몽매한 행동을 했더라도 근년에 잇따른 참사로 많은 희생자를 바쳤으니 어지간히 속죄가 되었을 터인데도 아직 멀었다는 듯이 더 큰 아픔을 안겨주고 있다. 참으로 야속하고 가혹한 일이다. 외국의 언론들이 「맹목적인 경제성장병」, 「할 수 있다 공화국」, 「외화내빈 풍조의 귀결」, 「빨리빨리 정신이 탈」이라는등 빈정대는 보도를 하고 있다 해도 그저 고개를 들지 못하며 초라하고 비참한 자화상을 볼 뿐이다.

인간의 생명을 경제와 바꿀 수는 없으며 그 경제란 그저 삶의 수단의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정치지도자나 국민들이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가 이 원초적 진리를 깨닫지 못한채 수십년을 지내왔다. 우리는 이러한 혼돈된 가치관의 노예가 되어 오늘과 같은 걷잡을 수 없는 총체적인 부실풍조를 낳았고 마침내는 1천여명이 모여 있는 5층의 백화점건물을 순식간에 모래성처럼 주저앉게 해 버렸다. 인간존엄의 절대성이 버림받는 사회란 야만의 사회요, 반인륜의 사회이며 까마득한 후진국가이다. 닥치는대로 무너지고 터지고 부서지고 하니 무섭고 겁이 나서 온전한 정신으로 살 수 없다고 야단들이다. 우리는 생명을 지탱하기 위해 냉정을 되찾아 이 사회의 악몽의 부실구조부터 무너 뜨려야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바로 삼풍참사가 있던 날 북쪽 청진항에 쌀을 싣고 갔던 우리 국적의 수송선이 인공기만 걸고 들어가 짐을 풀었다는 해괴한 소식이 전해졌다. 세상에 이런 망신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헤아릴 수 없는 수모이다. 정부는 인도적 견지에서 굶주린 북한동포를 위해 쌀을 보낸다고 했다. 항해선박의 국기게양이란 국적의 상징이요 엄격한 법적 요건이다. 하물며 식량이 부족하여 구원을 요청한 그들이 자혜를 베푼 우리에게 이러한 모욕을 주어 놓고 이 쪽의 항의를 받자 당국자로 지칭하는 자의 유감표시전문 몇자로 마무리를 지으려 하니 덮어 놓고 관용만 해야 옳은 일인지 한심스럽다.

북쪽이 남한을 상대하지 않겠다고 호통을 치며 우리를 제쳐놓고 미국에 겁을 주어 중유다, 경수로다 하여 큰 실속을 차린 다음 직접협상을 갈구하는 우리에게 쌀을 내놓으라고 큰소리를 치자 마치 거액의 빚이라도 진 듯 베이징에 까지 쫓아가 허겁지겁 그들의 요구에 순응하여 비밀합의를 해준 다음 황급히 쌀을 보내겠다고 서둘렀을 때부터 우리 국민의 자존심을 몹시 상하게 했다.

우리측이 첫 쌀수송선을 보낸다고 출항준비에 떠들썩하자 아니나 다를까 그 출항직전에 그들은 아직 이르다고 퉁기더니 끝내는 그 수송선의 우리 국기까지 끌어내렸다. 정부는 입항시에 쌍방국기를 모두 걸지 않기로 구두합의를 했었다고 해명했다지만 도대체 무엇이 두려워서 국기게양조차 못하고 그 곳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고 그 합의에 메모 한 장 받아놓지 않았다니 삼풍참사 못지 않게 부끄러운 일이다. 비밀이라니까 그 합의의 전말을 알 길이 없지만 남북대화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환상속에서 그저 쌀을 빨리 보내기에만 바쁜 나머지 그들의 상투적인 작태를 예상함이 없이 정작 그 절차등을 가리지도 않고 선뜻 합의를 해주어 버린 듯 하다.

그후 우리측은 그들의 속셈도 모르고 쌀을 외국에서 사서라도 보내겠다고 호언하는가 하면 국무총리와 관계장관들이 동해항에 쫓아가 요란한 출항행사까지 했다가 이 망신을 당했다. 이번 실수도 내실있게 대처함이 없이 허둥지둥 서둘러 자기과시를 앞세운 졸속과 부실의 소산으로 느껴진다.

우리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냉엄한 자기성찰로 원점으로 되돌아가 이 총체적 부실을 말끔히 씻고 착실하게 재출발해야 한다. 모든 일에 성급히 서두르지 말고 역사의 교훈과 자연의 섭리에 따라 오만과 허세를 버리고 오로지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우쭐댐이 없이 황폐하고 풀어진 정신상태를 바로잡아 나가야 하겠다.<변호사·전대한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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