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기관 10년간 불법자행 충격/조기총선 압박… 정권 최대위기펠리페 곤살레스 스페인총리가 도청스캔들로 집권 13년만에 최대의 정치위기에 몰렸다. 스페인 정국을 뒤흔들고 있는 도청스캔들은 지난달 한 신문 보도로 촉발됐다. 국방부 산하 군첩보기관인 세시드(CESID)가 84년부터 지난해까지 정치 경제 언론계 등 각계 요인들에 대해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게 전화를 불법 도청했다는 사실이 백일하에 폭로된 것이다.
도청대상에는 후안 카를로스국왕까지 들어있어 국민들은 프랑코총통 시절의 망령이 되살아난 듯 경악했다. 곤살레스총리도 보도를 접하는 순간 『악』 소리를 연발했고 야당은 쾌재를 부르며 총공세에 나섰다. 집권 사회노동당 내부에서도 이 스캔들로 금이 가는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다.
곤살레스 총리는 도청스캔들이 발생하자 즉각 조기진화에 나섰으나 들끓는 여론에 굴복, 끝내 가장 아끼고 신임해온 마지막 남은 「수족」들을 끊어야했다. 82년 집권당시부터 그를 보좌한 참모들중 최근까지 유일하게 정치생명을 지탱해 온 나리시스 세라 부총리(전국방장관)를 해임했고 가르시아 바르가스국방장관, 세시드 총책인 알폰소 망가노소장등 심복들을 잘라냈다.
야당들은 그러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집요한 공세를 벌여 지난달 28일 사회노동당까지 참석시킨 가운데 의회 차원에서 이번 사태를 「정부신뢰의 위기」라고 규정했다. 곤살레스 총리는 다음날 의회에 불려나가 사죄하는 수모를 겪어야했다.
그의 앞날은 더욱 불안해졌다. 93년 총선에서 18석차이로 분패한 중도우익의 국민당(PP)측은 『전화도청은 곤살레스 개인의 권좌유지를 위한 것』이라며 조기총선 실시를 촉구하고 있고 사회노동당과 함께 연정을 구성해온 카탈루냐당마저 등을 돌릴 태세다.
카탈루냐당이 연정에서 탈퇴할 경우 곤살레스총리가 취할 수 있는 카드는 조기총선뿐이다. 그는 93년에도 정치자금스캔들로 곤경에 처하자 조기총선을 실시, 기사회생한 바 있으나 현상황은 그 때와 다르다는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지난해 실시된 유럽의회 의원선거와 지난 5월의 지방의회선거에서 나타난 우파바람을 감안할 때 곤살레스총리로서도 쉽사리 조기총선 카드를 꺼낼 수 없는 형편이다. 때문에 그는 연정 붕괴조기총선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카탈루냐당 지도부 설득작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곤살레스 총리는 82년 사회노동당 당수로 총선을 승리로 이끌어 스페인 역사상 처음으로 좌파 정권을 출범시켰다. 그 이후 정치 경제적 숱한 파란을 겪었으나 노련한 정치력으로 곤경을 헤치며 13년간 권좌를 지켜왔다. 도청스캔들로 또다시 위기에 처한 곤잘레스총리의 정국돌파 카드가 주목되는 상황이다.<파리=송태권 특파원>파리=송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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