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않는한 죽음은 없다”/4일만의 아침햇살 “이제야 이승 실감”/허기·갈증에 빗물·오줌받아 마셔/구조작업 한때 환청의심… 가족생각에 견뎌/「지옥의 시간」 자꾸 떠올라 몸서리『이곳이 어디지. 천당인가 지옥인가. 아무튼 죽어서도 함께 있는걸 보면 우린 참으로 「질긴 인연」이군』
삼풍백화점 A동 지하3층에서 매몰 51시간만에 극적으로 생환한 윤성희(60·서울 관악구 남현동 1087)씨는 2일 상오7시 강남병원 583호 병실에서 눈을 떴다. 4일만에 처음 느끼는 아침 햇살에 잠이 깼다. 아직 혼미한 의식속에서 옆에 누워있는 동료선배 한경석(64)씨의 모습을 보고 여기가 어딘지 어리둥절했다. 『한형, 일어 났소? 몸은 괜찮아요』라고 나즈막히 물었다. 한씨는 깊은 잠에 빠진듯 대답이 없었다.
어젯밤 마누라(59)가 들것에 실려나오는 나를 보고 눈물을 터뜨리면서 『불에 타 재가 됐는줄 알았다』고 한 말이 떠올라 여기가 이승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살아있구나』 안도의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지옥」에서 빠져나온 듯한 지난 50여시간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사고 당시인 29일 하오5시45분께. 나는 평소처럼 자신이 맡고있는 지하1층 슈퍼마켓 청소를 마치고 지하3층 청소미화원탈의실에서 한씨등 동료들과 서울시장 선거결과를 화제로 잡담을 나누며 옷을 갈아 입고 있었다. 순간 갑자기 「꽝 」하는 강한 진동과 함께 문가에 있던 동료 2∼3명이 쓰러졌고 전등도 꺼져버렸다. 캄캄한 어둠속에서 계속해 무너져 내리는 천장과 벽의 콘크리트조각에 10명의 동료들은 어쩔줄을 몰라했다 몇몇은 밖으로 나가려고 했으나 콘크리트더미에 막혀 빠져 나갈 수가 없었다. 아비규환이었다.
다시 탈의실로 돌아왔다.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고 4평 남짓한 탈의실에서 쪼그리고 앉아 죽음의 공포감에 떨었다. 나는 미공일을 했던 경험을 살려 한씨와 함께 여자탈의실과 연결된 왼편 벽중앙의 유리문을 뜯기 시작했다. 창문을 뜯고 우리는 한명씩 여자탈의실로 빠져나갔다. 여자탈의실은 벽이 막혀 가스가 새어들어오지 않았다. 여자탈의실로 모두 빠져나간뒤에는 옷가지로 유리문을 틀어막았다. 이제 구조의 손 길이 오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공포에 떨고있는 여자동료들을 안심시켰지만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싸여있기는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얼마쯤 지났을까. 탈의실 천장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압사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속에서 몇몇 동료들은 다시 창문을 통해 남자탈의실로 이동했다.
피로와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잠들면 죽는다」고 외치면서 졸음을 쫓았다. 심한 가스와 연기로 입술까지 바짝 메마른 상태에서 갈증도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누군가 갈증을 못이겨 「비」를 받아 먹기도 했지만 「오염된 비보다는 오줌을 먹는게 좋다」는 의견에 도시락반찬통에 담아 조금씩 나눠 먹었다. 여자동료 양정순(59·경기 의왕시)씨가 『나이찬 딸년 혼례라도 치러주고 눈을 감아야 되는데 이렇게 죽는거냐』며 울먹였다. 나도 군대에 보낸 외아들 정구(25)의 모습이 떠올라 남몰래 눈가를 훔쳤다.
절망속에서 구조작업의 진동이 한가닥 생명줄처럼 아련히 들려왔다. 처음엔 환청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서로 확인하기도 했다. 그러나 진동음이 확실했다.
몇시간 지나자 갑자기 구조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우리는 살았다. 삶에 대한 확신은 어둠속에서 점점 또렷하고 큰 불빛으로 바뀌며 다가왔다. 모두들 환호를 했고 기쁨의 눈물이 쏟아졌다. 우리는 질서있게 연장자순으로 어둠을 빠져나가자고 합의를 했다. 24명 모두 구출될 때까지 우리는 절망하지 않으면 죽음도 이길수 있다고 확신했다.<정리=장학만 기자>정리=장학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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