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당신,이영이 부탁해요”/고 서석준부총리 미망인 외동딸잃고 한맺힌 오열/부인·남매·처제행불 애간장 윤연수 검사/“내딸들아” 영정안고 피눈물 정광진 변호사▷부총리 미망인◁
『먼저 가신 당신 얼굴을 어떻게 뵈야 합니까. 우리 이영이,당신이 그토록 애지중지하시던 이영이마저 잃는다면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국민대 가정교육과교수 유수경(54)씨에게 실종된 외동딸 서이영(27·미국 하버드대 석사과정졸업)양은 희망이자 위안이었다. 83년 10월 버마 아웅산 폭탄테러사건으로 부군인 서석준 당시 경제기획원장관겸 부총리가 순직한 이후 딸은 밝은 모습과 의젓한 행동으로 어둡던 집안을 밝게 비추는 한줄기 촛불이었다.
유씨는 28일 학술대회 참석차 캐나다로 떠났다가 현지 CNN TV보도를 통해 사고 소식을 접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에 전화를 건 유씨는 이영양의 소식이 끊겼다는 말에 30일 급거 귀국했다.
『여행 잘 다녀 오시라며 인사하던 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이영양은 친구와 함께 삼풍백화점 부근을 지나다 사야할 물건이 있다며 잠깐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변을 당해 아직도 생사불명인 상태이다.
유씨는 붕괴 현장과 사고수습대책본부, 병원을 돌아 다녔는데도 사망자 부상자 명단에 딸의 이름이 없자 서울 서초구 반포동 집에서 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아들 익호(30·미국 하버드대 박사과정졸업) 익재(군복무중)씨가 친구들과 함께 사흘 밤낮을 헤매고 다녀 보았지만 허사였다.
『하늘에 계신 당신,제발 이영이를 보살펴 주세요. 이영이를 잃으면 전 당신을 뵙지 못할 겁니다』 부군의 사진을 어루만지던 유씨는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조철환 기자>조철환>
▷윤연수 검사◁
서울지검 형사6부 윤연수(·32) 검사는 청사 7층 자신의 사무실에서 부인 서혜경(27)씨와 아들 원진(2)군 딸 하은(1)양, 처제 명숙(24)씨의 소식을 기다리며 벌써 나흘 밤을 꼬박 새웠다.
89년 31회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군법무관을 거쳐 올해초 서울지검에 첫 부임한 윤검사는 컴퓨터범죄등 첨단정보 관련범죄를 도맡아 해결하는등 촉망받는 젊은 검사다.
그 행복을 하늘은 질시한 것일까. 부인 서씨는 29일 원진이와 하은이를 데리고 백화점 지하 1층 아동복코너에 들렀다 실종되는 참변을 당했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M사에 입사예정이던 처제 명숙씨도 오랜만에 나들이에 함께 나섰다 변을 당했다.
윤검사는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집에 전화를 걸었다. 반응이 없었다. 집으로 달려갔다. 아파트가 텅빈 것을 확인한 윤검사는 『혹시나…』하고 하오 7시20분께 현장에 도착, 2시간동안 돌아다니다 옥외 주차장에서 부인 서씨가 타고 온 승용차를 발견했다. 『매몰됐구나』하는 생각에 눈물이 북받쳤다. 곧바로 검찰에 협조를 요청, 40여개가 넘는 병원 영안실과 응급실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행방이 묘연했다.
일때문에 밤늦게 귀가하는 남편에게 불평 한마디 없던 아내, 『아…빠』하며 품에 안기던 자식들. 윤검사는 가족의 시신만이라도 하루 빨리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박정철 기자>박정철>
▷정광진 변호사◁
『윤민아, 유정아, 윤경아…. 차라리 이 애비가…』
정광진 변호사는 말없는 세 딸의 영정을 부둥켜 안고 속울음을 삼켰다. 착하디 착한 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들이었다. 『내가 누구때문에 살아 왔는데…』 잔뜩 흐린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정변호사는 29일 하오 서울지법 재판을 마치고 동기모임에 참석중 사고소식을 들었다. 혹시나 하고 집에 전화를 건 순간, 세 딸이 생필품을 사러 백화점에 갔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얘기를 듣고 부리나케 현장으로 향했다. 『제발 살아만 있어다오. 하느님 제발…』
그러나 백화점 지상주차장에서 세 딸이 타고 간 청색 쏘나타승용차만 발견했다. 정변호사는 밤새도록 40여개 병원을 돌아다녔다. 30일 상오 10시께 쌍문동 한일병원에서 둘째 유정(28)의 주검을 찾은 정변호사는 억장이 무너졌다. 정신을 가다듬고 한가닥 희망을 안은 채 첫째 윤민(29)과 셋째 윤경(25)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시각장애인인 큰 딸 윤민은 88년 미국버클리대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모교 맹학교 교사로 일해왔다. 정변호사가 78년 서울지법 판사직을 사임하고 변호사로 개업한 것도 큰 딸 수술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며칠 뒤 남편, 한살바기 아들과 함께 미국유학을 떠나기 전에 친정에 들렸던 둘째 유정, 어머니곁에서 일을 거들며 화목한 집안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던 셋째 윤경. 『하늘 나라에서 만나자꾸나. 내 사랑하는 딸들아…』<윤태형 기자>윤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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