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꽝” 순간 생후 5개월된 아들안고 엎드려/엄마찾는 3세딸 달래며 극적으로 구출삼풍백화점붕괴의 아비규환속에서도 한 주부가 슬기롭고 침착한 대처로 무너진 철근더미에 깔린 생후 5개월된 영아와 세살배기 딸을 무사히 구해 「위대한 모성애」를 보여줬다. 영동세브란스에 입원중인 김고미(29)씨는 선물로 받은 상품권으로 세살배기 딸 현정이에게 유모차를 사주기 위해 5개월된 아들 현범군을 등에 업고 백화점을 찾았다. 쇼핑을 마친 김씨가 현범군에게 1층 로비에서 우유를 먹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꽝」하는 귀청을 찢을 듯한 굉음과 함께 유리와 모래를 동반한 휘오리 바람이 몰아쳤다. 순간적으로 위기를 직감한 김씨는 젖먹이 현범군을 가슴에 보듬은 채 한손으론 현정이의 팔을 힘껏 움켜쥐었다.
하늘이 무너지는듯한 일대 혼란이 지나간후 1 앞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칠흙같은 어둠이 사방을 둘러쌌다. 김씨는 현범이가 자신의 가슴안에서 숨을 쉬고 있는 것을 확인한 뒤 손을 더듬어 현정이를 찾으려 손을 뻗었으나 집채 만한 철근더미가 온몸을 누르고 있어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이때 2 정도 거리에서 『엄마』를 찾는 현정이의 목소리가 들렸고 김씨는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철근을 두드리며 현정이에게 소리가 울리는 곳으로 기어오라고 소리쳤다. 김씨는 우는 현정이에게 『아저씨가 구해줄거야. 용기를 내 기다려라』고 소리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한동안 시간이 흘렀을때 현정이가 『엄마 저쪽에 불빛이 보여』라고 말을 했고 김씨는 현정이에게 그쪽을 향해 기어가라고 외쳤다.
젖병 하나도 바로 세울수 없을 만큼의 틈사이에 눌려있던 이들은 유리 파편이 깔려진 바닥을 조금씩 기어 드디어 출구를 찾아 극적으로 구조됐다.
현범군은 오른쪽 다리가 부러지고 엉덩이와 허벅지에 깊은 상처를 입었고 현정이도 전신에 상처를 입었을 뿐 다행히 치명적인것은 아니었다.
어깨 타박상과 온몸에 파편으로 상처를 입은 김씨는 『당시 그곳에는 4∼5명의 아이들이 있었고 철근더미에서 사망한듯한 40대여자들의 시체가 보였다』며 참혹한 당시 상황에 몸서리쳤다.<송영웅 기자>송영웅>
◎“마지막 출근 한다더니…”/매장 여직원 사표내던날 어이없는 변당해/신혼의 꿈 순식간 빼앗긴 남편 망연자실
『마지막 출근이 영원한 이별이 될 줄이야…』
삼풍백화점붕괴사고로 1층 잡화부 화장품코너에서 일하던 아내 송은정(29)씨를 잃은 남편 김기형(31·서울 은평구 불광3동)씨는 믿어지지 않는듯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김씨는 사고 당일인 지난 29일 하오 1시께 송씨와 운명의 전화통화를 했다. 김씨는 『백화점 건물이 이상하다』는 아내의 말에 『어서 밖으로 나오라』고 했다. 그러나 송씨는 『오늘이 마지막 근무인데 끝까지 자리를 지켜야 한다』며 백화점을 떠나지 않다가 끝내 변을 당하고 말았다. 10년간 식지 않는 사랑을 나눠온 두사람으로서는 실로 어처구니없는 마지막 대화였던 것이다.
숨진 송씨가 백화점건물붕괴의 불길한 예감속에서도 자리를 지킨 것은 이날 마지막으로 사표를 내고 직장을 그만둘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백화점일에 지친 사랑스런 아내와 귀여운 며느리의 모습이 안쓰러운 남편과 시부모의 성화때문이었다.
경북 김천전문대 동문인 김씨부부는 캠퍼스 커플로 졸업후에도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면서 바늘과 실처럼 항상 함께 붙어다녀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압구정동 현대백화점에 함께 다니면서 7년동안 사랑을 키워온 김씨부부는 지난해 7월 결혼, 한창 신혼의 단꿈에 젖어있었다.
그러나 붙임성 좋고 명랑한 송씨의 성격이 불행의 씨앗이었다. 우수한 영업사원을 스카우트하려는 삼풍의 제의에 하루빨리 경제적 안정을 찾고 싶던 송씨는 93년 삼풍백화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남들은 4층에서도 살아나오는데 1층에서 왜 뛰어나오지도 못했느냐』며 오열하는 시어머니. 송씨의 아버지 송기선(61)씨는 사고소식을 듣고 충북 영동에서 서둘러 올라오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남편 김씨는 이제 눈물마저 마른 듯 유명을 달리한 아내의 사진을 넋을 잃은 채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조철환 기자>조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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