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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에 「인공기」 돌출 악재/정부,여론의식 강경대응 급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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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에 「인공기」 돌출 악재/정부,여론의식 강경대응 급선회

입력
1995.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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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북경합의 의도적위반 다분/“일 쌀제공 명분만 준꼴” 우려도북한의 한국 쌀선박 인공기 강제게양문제가 대북 쌀지원 합의 이행과정에서 돌발적인 악재로 돌출됐다.

나웅배 통일부총리는 30일 『당국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이 없는 한 쌀지원 계획을 전면 중단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정부는 당초 이 문제를 눈감고 넘어가려는 듯 했으나 여론의 비난이 드세지자 29일 밤 강경노선으로 급선회했다.

이에 따라 이달 중순께로 예정된 남북간 2차회담 역시 성사가 불투명해졌으며, 대북 쌀지원을 계기로 대화분위기가 무르익어가던 남북관계가 또다시 경색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씨 아펙스호가 북한 청진항에 정박하는 동안 태극기를 내리고 인공기를 게양케 한데서 비롯됐다. 정부는 28일밤 이 사실이 확인되자 즉시 대한무역진흥공사를 통해 이석채 재경원차관 명의로 북측에 강력한 항의의 뜻을 전달했다.

당초 베이징(북경) 합의사항에는 우리 국적선이 태극기를 달고 가되 북한 항구에 입항할 때는 쌍방 깃발을 모두 달지않기로 구두 합의돼 있었다는 것.

이에 대해 북한은 29일 하오 3시께 조선삼천리총회사를 통해 『이번 국기문제는 ▲첫 배이고 ▲청진항과 배와의 교신상 문제등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고 변명하고 『미안하다는 입장을 이대표에게 전해주기 바란다』는 내용의 전통문을 보내왔다.

삼천리총회사가 청진항 관계자들에게 제대로 지침을 통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북한측 도선사가 승선해 태극기를 내린 뒤 인공기를 게양하도록 했다는 설명이다.

하역을 마친 뒤 출항 30분 전에야 비로소 삼천리총회사의 과장이란 사람이 배에 올라 베이징 합의사항을 확인하면서 『앞으로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사과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북측 도선사와 항만책임자는 인공기 게양을 거부하는 우리측 선원들에게 신변상의 위협까지 가했으며 이는 다분히 의도적 행위였음이 드러났다.

더욱이 북한이 이날 보내온 전통문은 누가 보냈는지 주체가 명시돼 있지 않았다. 우리 국적선에 강제로 인공기를 달게 한 합의사항 위반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로 볼 수 밖에 없었다. 정부는 29일 밤늦게 북한에 놀아났음을 깨닫고 강경입장을 표명했지만 석연치않은 부분들이 많다.

이석채 재경원차관은 베이징접촉을 마치고 귀국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리 국기게양문제를 묻는 질문에 『우리 법과 제도가 허용하는 한 북측 입장을 최대한 수용할 것』이란 애매한 대답으로 대신했다.

통일원등의 관계 자들도 『모르겠다』는 말과 함께 「동포애적 차원」만 강조할 뿐이었다. 29일의 북측 전통문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북측이 일단 사과와 함께 재발방지를 약속해온만큼 이를 수용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이미 28일 하오 마산항을 출항한 돌진호가 북한쪽에 깊숙히 근접해있어 안전한 회항조치를 취하기위한 궁여지책이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설득력이 부족하다.

특히 우리 쌀지원이 중단되더라도 일본의 대북 쌀지원은 계속될 것이므로 우리 정부가 북·일쌀교섭에 명분만 제공해준 꼴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런 논리라면 이처럼 정부의 때늦은 강경조치 역시 또한번의 「패착」이란 비난을 면키 어려울것같다.<홍윤오 기자>

◎“북 협박으로 인공기 게양”/씨 아펙스호 김례민 선장 일문일답/통신시설 모두 통제 본국과 연락못해

북한에 다녀온 씨 아펙스호 김례민(38)선장은 30일 기자들과 만나 배에 인공기를 강제로 게양한 것은 협박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태극기 강제 강하및 인공기 게양과정은.

『북한 영해 진입후 계속 태극기를 달고 운항했다. 26일 하오4시께 청진항 관제실 지시에 따라 방파제 밖 0·5마일 해상에 닻을 내리고 정박해 있던중 하오5시께 도선사가 승선해 태극기 강하를 요구해 거절했다. 1시간 30여분동안 이 문제로 도선사와 다툼이 있었다. 그러나 하오 7시께 50대로 보이는 항장(항만책임자)이 출입국심사 관계자들을 대동하고 배에 올라와 「태극기를 계속 게양하면 선원들 신상에 해롭다」는등 협박을 해 신변에 위협을 느껴 어쩔수 없이 태극기를 내리고 인공기를 게양했다. 본국과 통신연락을 해 협의하려 했으나 통신시설을 북한측이 모두 통제해 불가능했다. 도선사와 삼천리총공사 강현명과장은 청진항 출항때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다음에는 태극기를 게양하고 입항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에 다녀온 소감은.

『쌀 수송업무를 무사히 마쳐 기쁘다. 그러나 청진항에 태극기를 내린채 인공기를 달고 접안하게 돼 선장으로서 책임감을 통감한다』

­청진항의 인상은.

『60년대말 우리 항만을 연상시킬 정도로 규모도 작고 노후했다. 크레인등 하역기기는 일제시대 것이어서 작업중 3∼4차례 고장이 났다. 접안직후 총을 든 3명의 무장군인이 선수 중앙과 선미부분에 각각 1명씩 4시간마다 계속 교대 경비를 했다』

­북한 하역인부들 남한쌀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가.

『알고 있었다』<부산=박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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