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시간 사투 “오! 저 불빛…”/“죽는구나” 체념위로 어머니 얼굴이/공포의 어둠속 인기척 “이젠 살았다”/폐허위엔 “눈부신 생명의 아침”『나는 살고싶다』
온국민이 충격과 경악으로 꼬박 새운 밤, 이행주(여·25·삼풍백화점 아이스크림부 판매원)씨는 콘크리트더미에 깔려 이렇게 수없이 자신을 다그쳤다. 『살아야지. 자면 안돼. 이렇게 죽을 수는 없잖아』 그는 마비돼가는 의식에 맞서 수없이 팔다리를 꼬집었다.
여기가 어디인가. 이씨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생각이 날듯말듯 모든 일이 먼 옛날처럼 아득했다. 기억나는 것은 꽝하는 굉음의 울림 뿐.
옆을 쳐다보았다. 넘어진 냉장고가 콘크리트 더미 한쪽을 받친 바람에 만들어진 작은 틈새에 몸이 끼여 있었고 오른쪽 다리는 콘크리트 더미속에 묻혀 있었다. 깜깜한 어둠속 바로 곁에는 아이스크림부 사장 추경영(43·여)씨가 신음하고 있었다.
이씨가 사고를 당한 것은 29일 하오 5시50분. 지하1층 아이스크림 코너에서 밀크셰이크를 만들고 있을 때였다.
정신이 든 것은 대략 2∼3시간쯤 지나서였다. 누군가 뺨을 때리며 『정신을 차려라』고 외쳐댔다. 사고당시 함께 일했던 추사장이었고 둘은 엉겁결에 계산대 밑으로 들어와 있었다.
목이 타는 듯 말라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아이스크림 스펀지를 헹군 물이 조금 고여있는 것이 보였다. 허드렛물을 스펀지에 적셔 목을 축였다.
한참 시간이 흘렀다. 옆의 주류판매 코너에서 『사람 살려』라는 귀에 익은 목소리가 금세라도 꺼질듯 들려왔다. 울음이 솟구쳤다. 이제는 지칠대로 지쳐 『이렇게 죽는구나』라고 생각하니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매캐한 연기가 자꾸 흘러들어 기침이 날 때마다 힘이 빠져들었다.
얼마나 더 시간이 흘렀을까. 마른침마저 삼킬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어둠 속에서 한줄기 작은 불빛이 들어왔다. 인기척과 철판을 두드리는 망치소리도 들렸다.
그러나 갑자기 망치소리가 끊기고 사방에서 아우성치던 사람들도 모두 숨졌는지 정적이 감돌았다.
이씨의 몸을 짓누르던 콘크리트와 나무토막이 걷힌 것은 30일 상오 7시50분께. 인기척이 들린후 두시간 후였다. 철판천장에 구멍을 뚫느라 시간이 많이 걸린 것이다.
14시간의 악몽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이씨는 들것에 실려가며 백화점이 있어야할 자리에 휑하니 뚫려있는 아침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이럴수가…』 이씨는 모든 것을 잊고싶어 눈을 감았다.<박진용 기자>박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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