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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5.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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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말 외세에 첫 개항을 했던 1876년 오늘의 서울인 한성부의 인구는 20만명이었다. 결코 작은 인구가 아니었지만 도시규모는 보잘것이 없었다. 그 이후의 서울인구 발전사를 보면 변혁기에는 인구가 크게 감소했다가 안정기에는 급팽창을 거듭했음을 알게 된다. ◆일제에 의한 합방때인 1910년 한성부 인구는 27만명. 일제의 무단통치가 자행된 1919년까지 인구는 18만2천명으로 크게 줄었다. 3·1 독립운동 이후 인구는 다시 늘기 시작했다. 물산장려운동과 민립대학 설립등으로 자식의 교육을 위해서나 일자리를 찾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30년에는 39만4천명으로 10년사이에 두배 이상 늘어났다. 31년에서 41년까지 경인지대에 들어선 근대식 제조공장은 65개. 36년 고양군 영등포 읍·숭인면·연희면·은평면등 9개 면이 경성부에 편입돼 부면적은 3만6천㎢에서 3.74배인 13만5천㎢로 확장됐고 그 결과 인구가 대폭증가, 40년에는 93만5천명에 달했다. ◆광복이 됐던 45년 인구는 1백10만명선. 광복으로 일본인 17만명이 떠났지만 해외동포 귀국과 월남동포들로 해서 50년 6·25전쟁 직전 인구는 1백50만에 이르렀다. 전쟁으로 서울인구 13만명이 사망·실종·납치됐고 휴전과 함께 인구는 다시 늘어 55년 1백57만명. 경제개발사업 착수로 60∼90년 사이 30년동안 서울인구는 폭발적으로 팽창했다. ◆59년 2백만명을 넘어선 인구는 88년에 드디어 1천만명을 돌파했다. 92년 1천92만명을 피크로 최근 2년동안 8만명이 줄어 현재 1천74만명이다. 1백20년동안에 53.7배나 급팽창했다.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서울인구는 줄 것인가 다시 늘어날 것인가. 서울의 인구집중을 해소하는 일도 조순 새시장의 큰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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