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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여름/이태동 서강대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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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여름/이태동 서강대교수·영문학

입력
1995.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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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삼매에 빠져들면 책속에 바다가 있고 눈덮인 산이 있음을 안다”어릴 때 여름방학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오면, 그동안 못 보았던 급우들이 무척이나 반가웠지만 한 뼘씩이나 자란 듯해서 낯설게 보였던 적이 있다. 이러한 기억은 새삼스럽게 여름이 자연속의 모든 것을 짙푸르게 만드는 태양이 있고 소나기가 있는 풍요의 계절이라는 것을 일깨워 준다. 그러나 여름은 또한 책과 함께 마음의 풍요를 가져올 수 있는 계절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가을은 학기도중이고 한참 일할 시기여서 누구나 마음놓고 책을 읽을 수 없다. 그러나 여름은 무덥지만 방학과 휴가가 있기 때문에,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마음을 지적인 풍요로 가득 채울 수 있다.

피서를 하는 길은 산과 바다로 가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독서의 삼매경에 빠져보는 데에도 있다. 여름에 독서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책을 통해서 오는 깨달음의 열락이 무더위를 이기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안다. 독서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은 책속에 바다가 있고 눈덮인 산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무협소설이나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기에는 풍요의 계절인 여름이 너무나 아까울 것이다. 무더운 여름동안이라도 뚜렷한 계획을 세우고 여느 때 다하지 못했던 「감정교육」을 위한 독서생활을 즐길 것 같으면 누구든지 여름을 정신적으로도 풍요로운 계절로 만들 수 있으리라.

독서를 할 때 책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어렵고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책을 올바르게 선택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무서운 시간의 힘과 싸워서 이기고 남은 고전을 선택하면 큰 잘못이 없겠다. 고전에 속하는 책들은 사람에 따라 너무 어려울 수도 있고, 너무 쉬울 수도 있다. 그러나 고전은 독서연령에 맞추어서 선택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하다. 고전은 다양한 분야에 걸친 명저들로 되어 있기 때문에, 문학에만 한정시킬 수 없다. 그러나 필자가 문학의 고전을 권유하는 것은 그것이 인문주의의 중심으로서 우리들에게 가장 절실한 인생문제를 미학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개체적인 인간은 제한된 시간과 공간속에 살고 있지만, 책은 앞서 간 사람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체험했던 귀중한 경험을 무한히 가져다 줄 수 있다. 나는 어릴 때 산그림자가 드리우는 내륙에 살았지만, 다니엘 데포와 멜빌등을 통해서 바다를 경험했고 나관중의 「삼국지」를 통해서 중국을 보았으며 「플루타크영웅전」을 통해서 알프스를 넘었다. 찰스 램의 수필집을 통해 삶의 통찰력과 사색의 지평을 넓혔고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을 길렀다.

독서를 통해 얻은 풍요로운 경험은 우리의 인식능력을 활성화시켜 지적인 성장을 가져와서 전인교육을 시킬 뿐만 아니라, 사물을 종합하고 분석하며 판단하는 능력을 키워준다. 고전이나 훌륭한 책을 읽는 것은 눈에 보이는 직접적이고 공리적인 이익만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도 좋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지식을 제공해 주는 이외에 인간의 의식을 보이지 않게 성숙시켜 우리의 정신에너지를 활성화시켜 줄 뿐만 아니라, 인류의 문화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상상력에 불을 지펴 준다.

무더운 여름동안 책을 한 권 더 읽고 못 읽는가에 따라, 가을에 돌아온 사람의 얼굴빛이 달라질 것임에 틀림이 없다. 이것은 어릴 때 여름방학을 끝마치고 학교로 돌아왔을 급우들의 얼굴들이 낯설어 보이는 것과도 같다. 성하의 계절에 읽은 한 권의 책이 자신의 운명을 바꿔 놓을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가능할 수 있는 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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