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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공직경력 「JP맨」/최각규 강원지사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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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공직경력 「JP맨」/최각규 강원지사 당선자

입력
1995.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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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원 창설 멤버… 42세때 “장관”/“경험·힘쏟아 강원발전 위해 노력”최각규 당선자는 JP맨으로 불린다. 3공과 6공에 걸쳐 농수산부장관 상공부장관 경제기획원장관겸 부총리를 지내는등 공직 경력이 화려하다.

61년에는 박정희 정권이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만든 경제기획원의 창설멤버로 참여, 5년간 투자예산과장을 맡았다. 이 시절 빼어난 업무처리 솜씨로 박대통령에게까지 인정을 받았다.

75년에는 42세의 나이로 농수산부장관에 취임, 그 해 쌀생산량 4천만섬을 돌파한 주무장관이 됐다. 또 77년에는 상공부장관으로 수출 1백억달러 돌파 기념식을 여는 행운도 얻었다. 이 때문에 그는 「억세게 관운이 좋다」는 질투의 소리도 들었다.

5공 내내 요직에 기용되지 못했던 그는 87년 6·29선언과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의 13대 대선출마를 계기로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이때부터 그는 3공시절 총리였던 JP의 오른팔역을 자임하며 그와 정치적 운명을 같이했다.

88년 13대 총선 당시 고향인 강릉에서 출마, 당선됐다. 이어 90년에는 JP와 함께 3당 합당에 가담, 초선의원 신분으로 민자당의 정책위의장을 맡았다.

부총리로 있던 92년 총선때는 지역구를 넘겨준 뒤 전국구를 희망했지만 공화계인 그에게 전국구 자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올해초 JP와 함께 민자당을 탈당, 자민련의 부총재를 맡고 있다.

그는 깐깐하고 직선적이며 지나치게 고집이 세고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또한 엘리트의식이 너무 강해 독선적이라는 이야기도 듣고 있지만 일에 관한한 정연한 논리와 빠른 판단으로 유능한 행정가라는 평판을 받고 있다.

그는 33년 강릉에서 태어나 강릉 최초의 개업의였던 부친밑에서 순탄한 성장기를 보냈다. 슬하에 1남2녀.<춘천=곽영승 기자>

◎이인제 경기지사 당선자/인권변론 명성 운동권 출신 첫 도백

학생운동권출신인 민자당 이인제 후보가 「제2의 서울시장」이라 할 수 있는 첫 민선경기지사에 선출됐다. 이번 선거에서 경기지사는 서울시장의 그늘에 가려 큰 주목을 끌지는 못했지만 7백만명의 인구에 부천,과천등 8개의 위성도시를 갖고 있는 경기도의 도세로 볼 때 경기도지사의 위상은 결코 만만한 자리가 아니다.

당초 김영삼 대통령등 당지도부는 경기지사 경선을 원치않았다. 그러나 이후보 스스로 『떨어져도 좋다』며 경선수용의사를 공표해버렸다. 키는 작지만 당찬 그의 일면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후보는 김영삼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받아 김영삼 정부출범때 44세의 나이로 최연소장관으로 입각했다.

87년 변호사였던 이후보는 당시 통일민주당총재였던 김대통령을 경복고 선배인 김덕룡 현민자당사무총장의 소개로 만나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보는 88년 13대 총선때 아무런 연고가 없는 안양에서 통일민주당후보로 출마, 금배지를 달았다. 당대변인과 5공청문회스타로 활약한데 힘입어 14대때도 무난히 재선됐다. 그는 충남 논산출신으로 경기도 토박이는 아니지만 의정활동을 통해 비대 경기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잘 파악하고 있다.

그는 노동부장관시절 「무노동 부분임금」이란 진보적 노동정책을 펴 여권내 보수세력으로부터 견제를 받았지만 현 여권의 실세인 경복고 출신들의 후광으로 당내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유지해왔다. 4남2녀중 넷째로 태어난 이후보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논산에서 중학교를 마친후 상경했다. 서울대 법대 졸업후 사병으로 군복무를 마친후 79년 늦깎이로 사법고시에 합격, 81년부터 2년간 대전지법에서 판사로 일한뒤 변호사로 개업, 주로 노동, 인권, 시국사건을 변론해왔다. 학창시절 만난 고향친구인 김은숙(46)씨와 오랜 연애끝에 결혼, 딸 둘을 두었다.<남경욱 기자>

◎문희갑 대구시장 당선자/“대구 살리기 경제시장 되겠다”

『위대한 경제대구건설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초대 민선대구시장으로 당선이 확정된 문희갑씨는 자신의 당선은 침체된 지역경제활성화에 대한 대구시민들의 염원이 반영된 것이라며 당선소감도 『반드시 경제시장이 되겠다』는 말로 대신했다.

승리의 주된 요인에 대해 그는 피폐된 대구경제를 회생해야 한다는 절박한 과제에 시민들이 공감한데다 새로운 인물에 대한 욕구가 작용한 것으로 본다며 『방향을 상실한 시민들에게 대구발전 청사진을 조속히 제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시정운영방향에 대해서는 민선시장답게 부드러운 봉사행정, 주민참여행정, 현장중심의 실천행정, 서비스 행정을 전개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제부터는 선거로 분열된 민심을 수습하는 시민대화합책을 꾸준히 시행하면서 「21세기 위대한 대구건설」이라는 대명제를 통해 카타르시스 시키겠다』고 장담했다.

그는 또 선거과정에서 불거진 동문 선후배인 후보들간의 갈등해소에 대해 『선거는 특수상황인 만큼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으로 본다』며 『우선은 무엇보다는 대구경제재건기획단을 구성해 본격적인 지방화시대에 새바람을 일으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대구=유명상 기자>

◎신구범 제주지사 당선자/“7월1일은 도민 화합의날 되게”

「경쟁과 자존, 번영으로 위대한 제주시대를 연다」는 선거구호를 내걸고 승리한 무소속 신구범 제주지사 당선자는 『나의 승리는 제주의 자존을 선택한 도민의 승리』라고 당선소감을 밝혔다.

민자당 우근민, 민주당 강보성 후보와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신당선자는 예상외로 2위의 우후보를 많은 표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신당선자는 제주지사 재직때인 지난해 11월 친족에게 해외여행경비를 줬다 검찰이 지난 3월 선거법위반으로 입건하자 「지사 출마저지 외압」을 내세워 무소속으로 출마, 동정여론을 불러 결정적인 승세를 굳혔다.

여기에다 유권자가 가장 많은 북부 지역연고세와 유권자의 무소속 선호성향, 명문 오현고 동문의 지지등으로 지지붐을 조성, 경쟁이 힘겨웠던 민자 우후보와 민주 강후보를 눌러 신승했다.

신당선자는 선거기간중 가장 어려웠던 것은 자신에 대해 『정체를 알 수 없는 유령단체와 개인명의로 음해성 흑색선전이 난무했던 일』이라며 아직도 구태를 벗지 못한 선거풍토를 개탄했다.

그는 앞으로 임기중 추진할 포부로 『오는 2001년까지 8조2천억원이 투자될 제주종합개발계획을 적극 추진하고 감귤을 적극 보호육성해 오는 2000년에는 도민총생산 1백억달러시대를 반드시 열겠다』고 밝혔다.

또 『선거과열로 빚어진 지역간 계층간 갈등을 해소키 위해 7월1일을 도민화합의 날로 선포, 도민화합의 장을 열겠다』고 말하고 자신이 내세운 10대 정책 선거공약도 충실히 실천, 『위대한 제주를 꼭 건설하겠다』고 다짐했다.<제주=허태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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