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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컷」/“술·마약·허위·파멸”/실패한 미국인 삶 단면들(영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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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컷」/“술·마약·허위·파멸”/실패한 미국인 삶 단면들(영화평)

입력
1995.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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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영상미학으로 담아내1988년에 폐암으로 요절한 미국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는 「미국의 꿈」의 내면에 숨어있는 실패와 패배의 드라마를 헤밍웨이식의 짧고 간결한 문체로 탐색하는데 성공한 재능있는 단편작가였다.

그는 자신이 자라난 북서부 태평양연안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피곤하고 서글픈 인생의 패배자들과 알코올중독자들의 이야기들을 소설로 썼다. 그가 강조한 인물들은 부모와의 유대도, 과거와의 연결도 없는 철저하게 개인주의적이고 놀랄만큼 외로운 미국인들이다.

「매쉬」「더 플레이어」등 소시민들의 일상적인 삶을 냉소적으로 묘사한 영화들로 유명한 로버트 앨트먼감독이 만들어 93년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영화 「숏컷」은 카버가 쓴 8편의 단편과 1편의 시를 혼합해 영상으로 바꾼 것이다.

LA근교에 살고있는 아홉 쌍의 부부와 한 명의 독신자가 등장해 각기 다른,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서로 연결되는 열 개의 에피소드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는 이 영화를 위해 앨트먼은 22명의 유명한 배우를 주연으로 등장시켰다.

원로 희극배우 잭 레몬을 비롯해 팀 로빈스, 앤디 맥도웰, 매들린 스토우등이 펼치는 완벽한 연기는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배가시켜 준다.

「숏컷」에는 의사, TV 앵커맨, 화가, 누드모델, 웨이트리스, 리무진 운전사, 폰섹스 상담자, 재즈 가수, 헬기조종사, 여자광대등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각자 우울한 실패를 다른 에피소드를 통해 보여준다. 이들의 결혼생활과 부부관계는 진정한 인간교류를 상실한 채, 기만과 허위 속에 파괴되어 가고 아이들과의 관계 역시 철저하게 단절되어 있다.

술과 마약, 방탕과 파멸,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삶의 실패는 바로 이 영화의 핵심주제가 된다. 「숏컷」이 호소력을 갖는 것은 이같이 실패한 주인공들의 모습이 우리 모두의 자화상일 수 있다는데 있다. 그러나 미국문화와 사회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너무 길고 지루하다.

자를 곳이 거의 없는 완벽한 구조를 가진 영화이긴 하지만, 요즘 사람들의 생체리듬을 고려해 두 시간 정도의 길이로 편집했더라면 훨씬 산뜻했으리란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문학과 예술, 그리고 삶의 진실을 찾는 사람들에게 「숏컷」은 훌륭한 영상미학으로 다가온다.<김성곤 서울대 영문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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