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라면 누구나 출세 명예 돈등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 볼 것이다.인간은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부지런히 배우고 열심히 일하지 않나 싶다. 그래야만 자신의 장래를 자신이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이 자유세계의 강점이다.
내가 남한에 와서 3년반동안 보고 듣고 느낀 것은 수도 없이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대학입시 경쟁이다. 고사장 문에 엿을 붙여놓고 기도하는 부모들을 보면서 과연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밖에도 북한에서 형성된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는 일들이 남한에는 너무 많다.
북한이 백성들의 의식주마저 해결해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직까지 버티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김일성부자에 대한 절대충성을 강요한 세뇌교육 때문일것이다. 이 세뇌교육은 직접 체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우습게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를 받아본 사람들은 엄청난 해독에 몸서리를 칠 수밖에 없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나는 부모님들께 큰 죄를 지었다. 북한에 있을 때 김일성부자의 생일은 기억하면서도 부모님 생신은 기억하지 못했다. 남한에 와서 생각하니 죄를 지은 것이지만 북한에서는 이것이 너무나도 당연했다.
남한에서는 입시가 중요하지만 북한에서는 김일성부자에 대한 충성심이 모든 일의 기준이 된다. 북한에서 출세를 하려면 충성심경쟁을 통과해야만 한다.
나는 북한에서 충성심경쟁에서 이겨 출세한 사람을 많이 보았다. 어제까지만해도 일반인 신분이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간부가 되어 거들먹거리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그 실례가 83년 평양뿐만 아니라 지방에까지 퍼져 북한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한 소문이다. 소문은 대강 이러한 것이다. 북한에서는 매년 연말에 김일성부자에 대한 충성심의 증거로 학습성과를 평가하는 시험을 치른다. 시험성적이 좋지 않으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심하면 좌천까지 된다. 평양의 한 공장노동자가 시험을 잘 치르지 못해 집에와 저녁늦게까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김일성선집을 펴놓고 밤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술과 여자를 좋아해 밤늦게까지 평양시내를 돌아다니곤 하던 김정일은 불꺼진 아파트단지에서 한집만이 불이 켜있는 것을 보고 호기심이 발동했다. 김정일은 불시에 이 집을 방문했고 김일성선집을 들고선 노동자를 보고는 「진짜혁명가」라고 즉석에서 호칭을 주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부자를 만난사람을 「접견자」라고 부른다. 북한에서 접견자는 죽을죄를 지어도 승인을 받지 않고는 체포되지 않는다. 승인없이 체포하면 오히려 체포한 사람이 봉변을 당한다. 며칠이 지나자 이 노동자는 평양에 있는 한 정치대학의 특별과정을 6개월간 이수하고 평안북도 간부로 발탁됐다.
남한의 입시경쟁은 게임의 룰이 있는 원칙있는 경쟁이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는 운이 좋아야만 출세를 한다. 일인 지배체제이니 우연이 판을 칠 수밖에 없다.
□약력
▲평안북도 염주군·32세
▲염주역 사로청위원장
▲신의주 제2사범 음악과졸업
▲재소 임업대표부 목재가공공장근무(러시아 하바로프스크소재)
▲91년 헝가리를 통해 귀순
▲연세대 노어노문학과 4년 재학중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