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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남북의 거리(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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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남북의 거리(사설)

입력
1995.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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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45주년을 맞는 6·25는 이제 전화의 흔적은 말끔히 사라졌어도 겨레가 입은 통증은 좀체 치유되지 않고 있다. 외세에 의한 한반도의 분단은 북한의 남침으로 더욱 고착되었고 증오와 적개심만 증폭시켰을 따름이다.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흘렀어도 남북관계는 한치의 발전이나 변화가 없이 오히려 긴장과 대립의 연속선이 계속되고 있음은 민족 모두에게 쓰라린 통절감만 안겨주고 있는 기막힌 현실이다.

이러한 냉엄한 상황에서 「6·25 오늘」의 의미는 각별하다. 굶주림에 시달리는 북한은 여기저기에 쌀구호를 요청하다 마침내 남한의 쌀을 받아들이기로 합의했다. 민족과 동포애의 거시적인 차원에서 우리는 쌀 수송을 서두르고 있다. 여기에 정치색이나 정략은 개입할 틈조차 없음은 너무나 당연할 뿐이다.

그럼에도 쌀을 받아들이는 북한의 자세는 요지부동으로 아무런 변화를 나타내지 않고 있음에 실로 착잡한 감회를 억누르기 어려운 실정이다.

돌아보면 6·25남침 45년동안 북한측은 화해의 제스처마저 인색했고 오로지 완매한 불변만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어렵사리 남북한의 대화는 간헐적으로 이어져 왔다. 적십자회담을 비롯, 조절위원회 정부차원의 고위급회담이 있었으나 합의는 번번이 파기되고 약속은 불발로 그쳤다. 눈에 보인 결실이 있었다면 한차례의 이산가족 왕래와 예술단 교류밖에 달리 진전이 없었다.

북한은 끈질기게 대남적화를 획책하며 기회포착을 노리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음은 더 이상 의문의 여지가 없다. 남침을 북침으로 덮어 씌우려다 공산권의 몰락으로 역사의 진실이 드러나자 이젠 대화 자체를 기피하는 극한의 대립상을 유도하고 있는 게 엄연한 사실이다.

6·25의 비극성은 민족 구성원 전체에 심대한 타격과 고난을 가했다는 것과 그로 인해 적의를 고양시켰으며, 이러한 고통을 완화하고 치유함을 북한측이 철저히 봉쇄하고 거부하는데 있다고 단언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러한 남북관계의 숨통을 여는 전기를 마련하려 크게 부심했다. 쌀회담의 성사가 새로운 단서가 되기를 기대하는 심정은 그래서 더욱 간절하다. 북한은 남한에서 보내는 쌀의 의미를 깊이 음미하기를 바란다.

6·25는 아직도 역사에 묻히지 않고 생생한 현실로서 버티고 있다. 수많은 희생자의 영령은 안식을 못 찾고 통일의 염원은 여전히 하나의 소망으로 구체적인 해결의 실마리가 잡히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남북의 화해와 이해를 기원하면서 6·25를 잊지 못한다. 민족의 상처가 아물기 위해선 더 많은 세월과 고난이 따라야 할 것이다. 6·25 오늘의 의미는 여전히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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