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남쪽으로 떠나는 여행길에 어렸을 적부터 알아온 「소리꾼」한분을 뵙게 됐다. 평생을 외롭게 소리에 미쳐 살아온 분이었다. 나는 오랜만에 만난 그분에게 지난해가 「국악의 해」여서 무척 분주하셨겠다고 하자 뜻밖에도 대답이 시큰둥했다.그는 『운명으로 알고 걸었던 길이 국악인데 새삼 국악의 해니 뭐니 부산을 떨며 실속없이 들쑤셔대 오히려 심란하고 서먹했었다』며 이제야 혼자있도록 내버려두니 살만 하다는 것이었다.
이리저리 불려다니고 들락거리다가 한 해가 지나고 나니 그 끝이 썰물빠져 나간 뒤처럼 예전보다도 더 적막하고 썰렁해졌다는 얘기였다. 오히려 공연스레 주변이 소란해서 지난해엔 소리가 「고일」사이도 없었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해온 일이라는 것이 묘해서 자꾸 판 벌여주고 나팔 불어주면 오히려 신명만 수그러들어 좋은 것도 나오지 않는다』며 이래저래 국악의 해에 자신은 별로 재미 없었다고 강조했다. 평생을 소리에 바쳐온 그분의 말씀이라 고개가 끄덕여졌다.
바야흐로 「미술의 해」행사가 무성하다. 전후좌우로 미술행사가 크고작은 폭죽처럼 쉴새없이 터진다. 알듯모를듯 조금은 수줍게 저만치에 가려있던 미술이 저잣거리로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다. 미술이 많은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선 느낌을 주게 된 것만은 어쨌든 「미술의 해」소득이라면 소득이다.
그러나 전혀 미술동네와는 담쌓고 살거나, 이해해보려는 노력도 않다가 「미술의 해」에 편승하여 엄벙덤벙 1년을 지내는 것만으로 미술과 참다운 친교가 생길 리 없다. 미술인들의 정신만 흐려놓을 뿐이다.
법석대고 소란만 떨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썰렁하게 식어버릴 「미술의 해」라면 가라, 어서 가라.<김병종 서울대교수·한국화가>김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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