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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쌀타결 뒤엔 조선족 있었다/중 입지전적기업가 최수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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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쌀타결 뒤엔 조선족 있었다/중 입지전적기업가 최수진씨

입력
1995.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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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과 10여년 무역거래 신뢰쌓아/남서 협조요청… 평양가서 설득『이번 한국측의 쌀 지원은 북한에 수혈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북한이 조혈 기능을 회복하는데 도움을 줄것입니다』

대북 쌀 제공을 위한 남북한 차관급회담에 앞서 있었던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와 북한 삼천리총회사간 비공식실무접촉때부터 막후중개역을 맡았던 조선족 기업인 최수진(45)씨가 협상타결의 흥분이 채가시지 않은 22일 기자와 만나 던진 첫말이다. 중국 헤이룽장(흑룡강)성 민족경제개발총공사 총경리(회장)로 중국내에서 성공한 대표적 조선족 기업가로 꼽히는 최씨는 차관급회담이 시작된 17일부터 21일까지 가장 마음졸인 사람중의 하나다.

최회장은 자신이 남북 쌀 회담 중개에 나선 것은 10여년 동안 대북 무역을 해온 처지에서 식량난에 처한 북한의 다급한 현실을 그냥 볼수만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북한에 조건없이 쌀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후 한국측에서 한 관계자가 찾아와 북한에 대한 쌀지원이 성사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며칠을 숙고한 끝에 평양으로 갔습니다. 관계자들이 냉담한 반응이어서 북한측이 나에게 줄 무역대금을 담보로 해도 좋다는 말로 북한 상부를 설득했습니다』

최회장은 김일성사망후의 첫 남북한 당국자 회담이 성사된데는 남측의 이니셔티브가 계기가 됐음을 이렇게 밝혔다.

차관회담중에도 최회장은 양측의 의견이 맞설 경우 남북한 대표를 따로따로 만나 한편으로 설득하고 한편으로 이해를 구하면서 상호의견을 좁히느라 애썼다고 밝혔다.

최회장은 북한과 무역거래를 한 것이 10여년이나 됐고 그동안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쌀 옥수수 밀 등을 수입, 북한의 어려움을 다소나마 도운 것이 북측의 신뢰를 얻은 것 같다고 말했다.

1950년 중국 헤이룽장성에서 태어난 최회장은 문화대혁명으로 연수현 조선중학교 2년을 마친 것이 학력의 전부이다.<베이징=송대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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