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장이 명동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을 때였다.한일협정을 반대하는 6·3데모의 여파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정국은 혼미해질대로 혼미해지고 국민은 국민대로 촉각을 곤두세우던 무렵 국립극단 연습실에서는 시국의 동태와는 상관없이 몇몇 연기자들이 연습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위때문에 시내교통이 온통 마비되어 연기자들이 절반도 채 모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명동 중심지까지 몰려들어 외쳐대는 시위대의 아우성 소리가 연습실의 벽을 마구 뒤흔드는 바람에 연습이 중단됐다. 자연 모두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시국에 대한 나름대로의 견해를 피력하기 시작했다.
시위대의 주장을 지지하는 연기자가 있는가 하면 어떤 연기자는 공산주의자들이 뒤에서 조종하고 있으니 그들의 계략에 학생들이 말려들어선 안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또 현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누군가가 뒤에서 학생들을 선동하고 있는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그런가 하면 수천 수만이나 되는 그 많은 군중에게 식권이 배부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건 틀림없이 정부 여당의 조작이라고 말하는 연기자도 있었다.
여러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을 때 그 때까지도 아무 말없이 계속 뻐끔담배를 피우면서 귀를 기울이고 있던 연출가 G씨가 드디어 심각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난 이렇게 생각해요』 연기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쏠렸다. 『난 이번 데모가 성공한다고도 볼 수 있고 성공 못한다고 볼 수도 있어요!』 연기자들은 어안이 벙벙하다 못해 어이가 없어 서로의 얼굴만을 번갈아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게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이며 세상에 그런 논리가 어떻게 성립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3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그런 논리와 그런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우리는 주위에서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만월의 밤 개짖는 소리처럼 들리던 그의 망발은 어쩌면 선각자들이나 할 수 있는 예언적인 명언이었을는지도 모른다.<이진수 연극배우>이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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