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쌀지원문제가 합의되자 국민의 관심은 교착된 남북관계가 과연 달라질 수 있을 것인지, 그럴 경우 어떻게 달라지게 될 것인가에 모아지고 있다. 쌀합의를 계기로 정부안에서는 물론 각계에서는 관계개선에 대한 기대와 추측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이 시점에서 쌀지원에 반대하는 국민은 거의 없을 듯하다. 지금까지 북녘의 식량난에 관한 보도에 반신반의했던 국민도 북한이 그토록 등을 돌렸던 남한 정부를 통해 쌀을, 그것도 자존심을 내세워 유상을 고집하다가 선뜻 무상 공여를 수용하는 것을 보고 새삼 북한 동포들이 겪고있는 식량난의 심각성을 감지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뜨거운 동포애와 관계개선에 대한 갖가지 기대와는 달리 북한의 태도를 보면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5일간의 베이징(북경)의 쌀협상에 관해 그쪽 선전매체들이 일체 보도하지 않은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22일 하오 합의내용을 서울과 평양에서 각각 발표하기로 약속했음에도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하기야 북한은 지난 13일 경수로원전에다 부대시설등 남한으로부터 30여억달러이상의 지원을 확보받았음에도 단 한마디 「남한」얘기를 한적이 없었다. 이번 쌀협상 막바지인 21일에도 방송을 통해 한국통신노조사건과 선거반대선동을 펼쳤다. 이어 합의를 한 날에도 『국가보안법을 그대로 두고는 평화통일을 이룩할 수 없다』고 주장했고 그에 앞서서는 김영삼대통령에 대한 인신공격과 폭언을 해 우리측을 의아하게 한 것이다.
이같이 뜨거운 동족애와 화해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북한의 태도를 과연 언제까지 끌어안고 또 이해해야 하는지 회의를 갖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은 앞으로 쌀을 받은 뒤에는 남한당국이 굴복해서 김정일의 핵공갈정책에 고개를 숙이며 보낸 것이라고 보도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정부에 당부하는 것은 쌀지원이 만병통치약인 양 당장 북한의 닫힌문을 열수 있고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것처럼 국민에게 성급한 기대를 불어넣지 말라는 것이다.
김대통령이 『앞으로도 쌀은 계속 지원할 것이며 모자랄 경우 외국서 사서라도 보내겠다』고 말한 뜻은 이해할 수 있으나 합의문이 전례없이 공개되지 않고, 북한이 초장에 약속을 깨고 합의내용을 밝히지 않는데도 과연 그렇게 지원하는 것이 타당한지는 숙고해야 한다.
쌀합의는 남북 어느쪽의 성패가 아닌 신뢰를 시험하는 시금석이다. 따라서 단기적인 성과를 성급하게 기대하지 말고 긴 시간을 두고 북한의 변화를 촉구하는 촉진제로 여기는 자세가 중요하다. 아울러 저들을 감싸되 반드시 원칙은 견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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