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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없는 단독범” 판단 새벽작전/일 여객기 납치사건 해결 안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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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없는 단독범” 판단 새벽작전/일 여객기 납치사건 해결 안팎

입력
1995.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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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쓰고 흉기대항 쉽게 제압/승무원들 눈가리고 승객은 기체뒤로 몰아 격리/“옴교도·폭파” 위협에 더 공포감15시간여 동안 일본 열도를 경악케 했던 전일본항공(ANA) 보잉747 점보기 공중납치사건은 22일 새벽 일본경찰의 신속한 진압작전 성공으로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장시간의 정보분석을 바탕으로 훈련하듯 행해진 이날 작전은 일본 최초의 여객기납치 강제진압으로 기록됐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올해들어 「치안 최고」를 자랑하는 잘 짜여진 일본사회의 허점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는 일련의 사건시리즈에 또 하나를 더 한셈이 됐다.

○…홋카이도(북해도) 도경과 도쿄(동경)경시청의 혼합부대로 편성된 경찰의 대테러특수부대원 약 50명은 이날 상오 3시35분 2열종대로 납치된 보잉 747여객기 뒤쪽으로부터 기체밑으로 접근했다.

기체의 왼쪽 출입문 3곳에 특수제작된 사다리를 대고 올라간 경찰은 맨앞쪽 출입문 곁에 복면을 한 채 여승무원과 함께 있던 범인을 간단히 검거했다. 체포당시 범인은 들고 있던 드라이버로 대항하다 얼굴에 전치2주의 상처를 입었다.

○…경찰당국이 특수부대원을 기내에 투입키로 한 것은 정보분석 결과 범인이 1명이고 폭탄도 갖고 있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조종석과 관제탑의 무선망, 기장과 항공사를 연결하는 「컴패니 라디오」가 정보판단에 큰 도움을 주었다. 범인이 여승무원을 시켜 NHK에 걸어온 전화통화 내용과 승객이 휴대폰으로 경찰에 알려준 내용도 기내상황 파악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승객들은 범인이 혼자서 3백64명의 승객및 승무원을 15시간이상 인질로 삼는게 가능했던 이유로 옴진리교에 대한 공포증과 정보의 통제를 들었다.

풀려난 승객들은 범인이 마스크를 쓴 채 움직이면 폭발물을 터뜨리겠다고 위협한 데다 기내 라디오방송에서 「범인이 옴진리교도」라는 뉴스가 흘러나와 사린등 독가스를 휴대했을 가능성때문에 공포에 떨며 위축됐었다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범인은 또 15명의 승무원중 객실승무원 11명의 눈을 가려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승객들은 기체 뒤쪽으로 몰아넣어 상호간의 정보교환을 봉쇄한 뒤 여승무원을 비서처럼 대동하고 다니며 명령을 했다고 승객들이 전했다.

○…경찰은 처음에는 범인을 복수로 판단했으나 범인이 기장이나 여승무원에게 시켜 『여러명이 더 있다』고 강조하고 조종석에 한번도 들어오지 않은 점,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간접확인돼 전문테러범이 아니라 단독범이라는 최종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또 외부와의 교신에서 『플라스틱 폭탄이 장치됐다』는 위협을 반복하고 NHK와의 전화에서는 『액체폭발물과 그 이상의 무기를 갖고 있다』고 강조한 점이 역으로 범인의 무장상태가 치졸한 수준임을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됐다.

경찰투입결단을 내린 무라야마도미이치(촌산부시)일총리는 진압작전 완료후 회견에서『마지막에는 기도하는 심정이었다』고 당시의 초조했던 심정을 토로했다.

○…이번 경찰작전에는 일본 언론의 전폭적인 협조가 눈길을 끌었다.

경찰은 이날 상오 2시직후 각언론사에 작전계획을 알리면서 승객의 안전확보를 위해 일체 보도하지 말것을 요청했다. NHK는 물론 각 방송사는 보도화면을 모두 조종석에만 고정시킨 채 『이 상태가 언제까지 계속될 지 모르겠다』는 식의 방송을 계속해 범인을 안심시켰다.

상오 3시45분 범인이 체포되자 방송들은 일제히 경찰의 기체접근 모습을 내보내면서 경찰측의 보도자제요청이 있었던 사실도 함께 전했다.<도쿄=황영식 특파원>

◎옴교와 무관 50대 휴직자/예상밖 평범 납치범 주변/도쿄의 은행조사역… “미안하다” 말반복

지쳐있는 초로의 샐러리맨 휴직자. 22일 새벽 일본경찰에 체포된 납치범은 흔히 대하는 테러리스트의 모습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

흉기를 휘두르며 마지막 저항을 할 때만 해도 그는 젊었다. 그러나 특수경찰과의 격투중 자신의 흉기에 얼굴을 다쳐 피투성이로 체포돼 응급치료를 받은 뒤 경찰조사에 임한 그의 모습은 경찰의 실소를 자아내기에 족했다.

범인은 도쿄(동경) 오타(대전)구에 거주하는 53세의 구쓰미 후미오(구진견문웅)라고 밝힌 후 범행사실은 시인하면서도 범행동기등에 대해서는 『미안하다』는 말만을 반복했다.

외동딸을 출가시키고 동갑의 부인및 두아들과 함께 살아온 그는 73년 고베(신호)에서 상경한 이래 도요(동양)신탁은행에서 컴퓨터개발과 운용을 담당하는 조사역으로 일해왔다. 그러나 93년 가을 호흡기 질환때문에 자주 직장을 빠지는 바람에 지난해 가을 휴직처리됐다.

경찰조사결과 그는 옴진리교의 신자는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15시간여 3백64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억류하고 군림했던 그는 일단 얼굴에 쓰고 있던 복면용 털모자와 선글라스, 주름진 손을 가리고 있던 목장갑이 벗겨지자 일시에 허물어졌다.

상오 2시가 넘어 2층객석에서 그와 얘기를 나눈 한 여승객은 『얼굴을 가리고 있어 무서웠다』면서 『조직에 속해있다고 강조해 그대로 믿었다』고 회고했다. 이 승객은 그가『 이대로 도쿄로 못돌아 가면 어쩌나』라고 걱정했으며 상오 3시께는 『내가 혼자인 걸 알아챈 모양』이라고 큰소리로 흥분해 떠드는 소리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런 사람이 드라이버하나로 3백명이 넘는 많은 인원을 통제할 수 있었던 자체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승객들은 하나같이 뒤쪽으로 가라면 가고, 눈을 가리라면 가리고, 고개를 숙이라면 숙였다. 승객들은 풀려난뒤 『사린 공포에 떨었다』고 말했다.

고베지진과 도쿄지하철 사린테러 사건이후 일본사회에 만연한 「심적 외상후의 스트레스 장애(PTSD)」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실감시켜주는 납치극이었다.<도쿄=황영식 특파원>

◎범인체포 휴대폰이 큰공/승객들 화장실서 경찰과 통화/기내상황·범인 인상착의 제보

21일 하오 5시10분. 전일본항공(ANA)소속 보잉747 여객기 납치사건 해결에 애가 타 있는 홋카이도(북해도) 도경 긴급대책본부의 전화벨이 울렸다.

자신을 피랍 여객기에 탑승하고 있는 승객이라고 소개한 45세의 한 남자는 기내의 사정을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범인은 젊은 남자이며 선글라스를 끼고 폴로셔츠에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을 하고 있다. 스튜어디스는 보이지 않는다』 이 승객은 화장실에서 휴대폰으로 전화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낮춘 채 침착하게 이야기를 계속했다.

피랍 5시간여가 지나도록 기내 정보에 감감했던 경찰은 비로소 기내 상황에 대해 윤곽을 잡을 수 있었다. 이후 하오 7시56분까지 6건의 전화가 기내 승객으로부터 경찰본부로 걸려오며 다양한 정보가 전해졌다. 『범인은 20∼30대로 보인다』『흉기는 보이지 않고 안테나 비슷한 것이 달린 물건을 들고 있다』는 등등.

특히 『범인은 2층에서 전혀 내려오지 않는다』고 한 제보는 경찰이 자신있게 1층 출입구를 통해 기내진입을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범인이 체포된 후 경찰이 갖고 있던 정보와 틀렸던 사항은 나이뿐이었을 정도로 모든 정보는 정확했다.

15시간여에 걸친 대치시간 동안 줄곧 경찰의 눈과 귀 역할을 한 휴대폰은 어떠한 대 테러용 첨단 장비나 무기 보다도 더 큰 공을 이번에 세운 것이다.

이가라시 고조(오십람광삼)관방장관도 이같은 사실을 시인했다. 그는 『많은 승객들이 범인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이용하거나 혹은 화장실에 들어가서 가지고 있던 휴대폰을 통해 많은 정보를 알려줬고 이는 진압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데 필수적인 요소가 됐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범인도 15시간여에 걸친 대치상황 동안 휴대폰을 사용, 여승무원을 시켜 TV방송국에 자신의 요구조건 등을 전달하게 했다.

승객들은 또 경찰에 대한 제보 이외에 피랍이후 걱정에 휩싸여 있을 친지들에게 안부전화도 6건이나 하기도 했다. 이때 승객들은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로 휴대폰을 스포츠신문으로 말아 감시를 피하는 기지를 발휘했다.

이번 ANA소속 보잉747 여객기 납치사건에서 3백64명의 인질이 무사히 구출되자 일본에서는 너나없이 일등공신은 바로 휴대폰이었다며 화제에 올리고 있다. 정보 통신의 발달과 이들 장비의 대중화로 고전적 형태의 납치테러는 더이상 발붙이기 힘들 것 같다.<도쿄=이재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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