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이 떠름한 여름철이면 냉면이 역시 별미다. 냉면집에 가면 가끔 민짜라는 말을 듣는다. 꾸미가 안 든 냉면이다. 민자 또는 민패라고도 하는데 뜻은 같다. 본래 의미는 아무 꾸밈새 없는 소박한 물건, 아무것도 새기지 않은 평평한 물건이거나 얼굴에 귀와 코가 없고 손발에 손가락 발가락이 없는 것이다. ◆남북의 쌀회담이 성사되자 전국의 도정공장이 갑자기 바빠졌다. 북한에 보내는 쌀을 도정해서 포장을 하고 하루빨리 항구로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쌀은 40㎏ 단위로 PP(폴리프로필렌) 포대에 담겨지고 있다. 가득히 쌓인 쌀포대의 사진이 신문에 일제히 실렸다. ◆그런데 포장지엔 무슨 표기나 글자 한자조차 없다. 북의 요청으로 원산지는 알려지지 않도록 합의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얼굴 없는 남한 쌀이 「민짜 쌀」이 되어 우리 배에 실려가는 셈이 아닌가. 하늘 아래 이런 일은 처음일 것 같다. 받는 자가 주는 자를 모른척하는 것이다. ◆남에선 보내면 그만이지만 북에서 그 출처를 어떻게 설명할지가 궁금해진다. 막연히 외국쌀을 사들였다거나 빌려 왔다고 할까. 아니면 이밥을 먹으면 되었지 따져서 무얼하겠느냐고 짐짓 외면해 버릴 것인지 짐작도 안간다. 어떻든 북한주민이 단경기를 맞아 배를 곯지 않고 넘기면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쌀회담을 마치고 호텔을 나서는 북한의 당국자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사라졌다. 민짜 쌀이라야 받아들이겠다는 속셈은 누구라도 훤히 읽을 수 있는게 아니겠는가. 북한의 표정관리가 어떻게 변할지, 그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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