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있는 만남이 이루어낸 대축제연극은 만남의 예술이다. 희곡과 연출과 배우의 만남, 무대와 관객과의 만남, 재능과 자본의 만남. 연극불황기에 극단 창단으로 도전할 만큼 배짱을 가진 유인촌이 분방한 기질의 이윤택과 만났고 그들이 펼쳐내는 무대 위에서 다양한 연극적 기호들이 성공적으로 만나고 있다.
작가로서 이윤택은 연산을 둘러싼 정치역학과 어머니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해석을 접목하고, 산 자들의 현실세상과 죽은 자들의 영적 세계를 만나게 함으로써 인간과 역사에 대한 입체적 관점을 제시한다. 냉철하게 정곡을 찌르는 논쟁과 가슴에 스며드는 아름다운 시구들을 적절하게 안배하며, 특수한 상황속의 인물들에게서 인간모습의 보편성을 끌어내 장엄한 비극의 세계를 창조한다. 연산이 왕위를 찬탈당하고 연못속에서 스러져 갈 때 폐비 윤씨의 혼과 장녹수가 이중창으로 서리처럼 내뿜는 절규 속에서 공포와 연민은 절정에 이르고, 죽음이 죽음을 부르는 비극의 사이클은 일단락된다.
이윤택은 여전히 극과 놀이의 만남을 시도한다. 그러나 꼼꼼하게 쌓아올린 긴장과 몰입을 순간의 장난으로 흩어버리는 장면들은 대부분의 관객들을 허탈하게 하고 때로는 배신감을 느끼게까지 한다. 연출가로서 이윤택은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노래와 몸짓, 소리들을 서로 만나게 하며,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개념들을 구체적으로 풀어 간다. 극의 흐름의 방해없이 날렵하게 무대를 채우고 비우며, 리듬감있게 운용한다.
디자이너들, 배우들의 만남도 효과적이다. 스산한 대숲으로 둘러싸인 퇴락한 폐궁을 재현한 신선희의 세트가 볼만하다. 무대를 압도해서 배우들에게 운신의 폭을 제한한 한계는 있지만 최형오의 의욕적인 조명과 어우러져 처연하고 아름다운 장면들을 인상깊게 담아낸다. 그에 비해 파스텔톤의 의상은 극의 에너지와 강도를 받쳐 주기에는 약한 감이 있다.
극의 중심을 무게있게 잡아 가는 것은 유인촌. 그의 다부진 몸매와 동안의 얼굴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사그라드는 연산과 에너지를 분출하는 폭군의 연산을 잘 조화시키고 있다. 녹수 이혜영은 교태스런 몸놀림과 음성이 맛깔스럽다. 연산을 에워싼 대신들이 좀 더 관록있는 배우들이었다면 권력대결 안에서 숨막힐듯 조여드는 분위기가 훨씬 실감났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그동안 거칠고 냉소적인 풍자로 분투하던 이윤택이 전통적인 연극관을 가진 유인촌과 만나 재능을 흡족하게 발휘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의미있는 만남으로 시작한 극단 유가 앞으로도 관객들이 행복하게 연극을 만나는 일에 디딤돌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이혜경 연극평론가>이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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