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식량난이 날로 악화하여 대다수의 인민이 굶주린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기 힘들었다. 국민에게 밥도 못먹이면서 신처럼 군림해온 김일성·김정일 부자에 대한 분노, 이 풍요로운 시대에 끼니를 거르고 있는 동족에 대한 안타까움이 솟구치곤 했다.북한이 제발 쓸데없는 자존심을 버리고 남아도는 남한의 쌀을 받아다가 인민의 배고픔을 덜어주었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일관된 희망이었다. 난데없이 베이징(북경)에서 남북 쌀 회담이 열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도 그 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북한이 우리 쌀을 받음으로써 남북관계에 변화가 오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쌀회담에 임하는 북한의 태도를 지켜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남한의 쌀이 북한으로 가면 북한에서는 과연 무엇이 올 것인가를 궁금해 하고 있다.
이인모 노인의 예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 김영삼정부는 출범 한달만인 93년 3월 북한이 오랫동안 송환을 요구해온 미전향 장기수출신 이인모노인(76)을 아무런 조건없이 전격적으로 북에 돌려보냄으로써 문민정부의 진취적인 대북정책을 만천하에 과시했다. 그를 돌려보내면서 정부는 핵문제와 팀스피리트훈련을 둘러싸고 교착상태에 빠졌던 남북관계에 봄바람이 불고, 북한측의 화답이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이인모노인을 돌려보낸후 무슨일이 있었던가. 6·25때 내려와 빨치산으로 활약하다가 체포되어 34년간 옥고를 치르고, 끝내 전향을 거부했던 이인모노인은 42년만에 고향으로 돌아가서 아내와 딸을 만났고, 무엇보다도 「친애하는 어버이 수령」을 만났다. 그는 「위대한 장군님의 품으로 돌아온 통일영웅,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의 승리를 과시한 혁명영웅」으로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평양방송과 노동신문은 남한의 인도주의적 북송을 외면한채 그동안 남한이 이노인을 비인도적으로 학대했다는 비방만을 늘어놓았다.
이인모노인의 북송이 결국 김일성에게 보낸 최고의 선물이었던 것처럼 이번에 보내는 쌀도 김정일의 주석직승계 시점에 인민들에게 나눠줄 「하사품」으로 악용되고 마는게 아닌가라는 의혹을 많은 사람들이 품는것은 당연하다. 굶는 동족에게 쌀을 보내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조건없이」라는 정부의 입장이 말 그대로 조건없이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북에 쌀을 보내면 무엇이 돌아오나에 대해서 정부는 국민에게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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