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의 소설은 단정함과 모호함이라는, 언뜻 생각해서 상반돼 보이는 특성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 그녀의 소설은 치밀한 지적 통제의 소산으로서 군더더기를 찾아볼 수 없으며 정교하게 짜여져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투명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녀의 소설은 정작 간편하면서도 단일한 해석적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녀의 소설이 내장하고 있는 다의성은 끝없이 독자의 기대지평을 교란시키며 어떤 불확실하면서도 긴장된 미지의 영역으로 나아가게끔 만든다. 「문학과 사회」 여름호에 발표된 최근작 「열세 가지 이름의 꽃향기」에도 그녀의 이러한 작가적 개성은 여실히 드러나 있다.이 작품에서 우리는 먼저 매일 북극의 얼음벌판을 꿈꾸는 한 청년과 자살을 결심하고 어두운 국도변에서 차를 기다리는 한 소녀를 만나게 된다. 필연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의 힘에 의해 이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도시적 삶에 쉽사리 적응하기 힘든 성향을 지닌 이들은 땅끝에 있는 외딴 산마을로 들어가 거기서 조촐한 삶을 꾸려나간다. 그러나 이들이 길러낸 바람국화라는 이름의 희귀한 꽃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욕망의 난투장인 현세적 삶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리게 된다. 이 소설은 바람국화가 몰고 온 한바탕의 소란과 열기를 보여준 뒤 두 주인공이 폭풍우치는 밤 북극을 향해 떠나는 장면으로 끝을 맺고 있다.
서정적으로 시작한 이 중편소설은 중간부분부터 마술적 리얼리즘을 연상시키는 환상적 수법을 도입하는가 하면 후반부는 풍자적인 현실비판의 색채가 전면화하는등 다채로운 편곡방식을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언술이나 형식상의 특징보다 더 강렬하게 읽는 사람을 사로잡는 것은 이 소설의 두 주인공이 꿈꾸는 「북극」이 상징하고 있는 의미일 것이다.
그들이 가고자 원하는 낙원은 보통사람들이 연상하는 충만이나 풍요와는 정반대되는 성격을 갖고 있다. 그 낙원은 오히려 현재적인 것, 현실적인 것의 결핍과 불모로 규정지어질 수 있는 공간이다.
이 소설에서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인물 가운데 하나로 행진곡을 즐겨 듣는 식물학자를 들 수 있다. 소설 결말에서 두 주인공의 밤바다행은 풍요와 과잉을 향해 전진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행진대열로부터의 일탈을 의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극의 얼음벌판, 그곳은 아마도 인간적 욕망과 열기가 다 탕진되고 난 뒤 펼쳐지는 백색의 낙원을 의미할 것이다. 형체도 없이 세상 곳곳으로 퍼져 나가는 꽃향기처럼 그것은 부재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그 낙원은 더 이상 낙원이라 불릴 수 없는 낙원이다.<남진우 문학평론가>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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