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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가요/이덕남(서울에서 본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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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가요/이덕남(서울에서 본 평양)

입력
1995.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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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고위급회담이 한창이던 91년 우리 대학가 일각에서 북한 유행가 「휘파람」과 「선반공처녀」가 유행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요즈음은 그렇지 않지만 그때는 그랬다.내가 북한에 있을 때 북한 대학가에서 남한의 유행가가 유행해 북한당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적이 있다. 남한의 북한노래 유행이 일시적 호기심에 의한 것이라면 북한의 남한노래 유행은 체제위협으로 받아들여지는 심각한 것이었다.

이 때 북한에서 유행한 남한 유행가는 「사랑이란 두글자」와 「바람 바람 바람」이었다. 북한 대학생들은 두 노래가 남한노래인 줄 모르고 불렀다. 이 때 북한당국은 철저한 뒷조사를 했고 학교당국은 자아비판을 한다고 떠들썩해 많은 학생들을 불안하게 했다.

뒤늦게 밝혀진 「사건」 전모는 일부 부유층의 자제들이 부모 몰래 남한연구용 녹음테이프를 들고나와 가사만 조금 바꿔 재미로 부른 것이 그만 유행이 돼 버렸다는 것이다. 이 노래는 대학가는 물론 청소년층에까지 널리 불렸다.

나는 요즈음 학교(연세대)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면 어김없이 이 노래를 찾는다. 그러면 같이 간 일행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들이다. 흘러간 옛노래를 왜 그리 좋아하느냐는 것이다.

북한 대학생들에게 두 노래가 유행했던 것은 이 노래가 김일성부자 칭송 일변도이거나 교조적인 북한노래와 너무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을 주제로한 노래여서 젊은이들의 가슴에 쉽게 와 닿았을 것이다.

노동성과 혁명성을 강조하는 가요에 식상한 북한 대학생들에개 애정을 주제로 한 노래가 유행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했을 것이다.

나도 북한에 있을 때 이 노래가 어디 노래이며 누가 작사·작곡한 것인지 모른채 즐겁게 불렀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이 노래가 남조선 노래인 것을 알고 경악을 했지만.

이 사건이 있고 난 뒤 북한 대학가에서는 집단 사상투쟁과 자아비판회가 열렸고, 혁명적이고 투쟁적인 노래를 부르자는 학술발표모임까지 있었다.

북한에 그나마 애정가요가 선을 보인 것은 89년 평양에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제가 있고나서였다. 축제가 끝나자 북한당국은 퇴폐적인 자본주의문화가 유입될 것이 우려된다며 젊은층에 대한 통제와 교양선전을 강화했다.

특히 남한노래 유입을 막기위해 애정노래인 「휘파람」과 「선반공처녀」의 전파를 허용했다. 딱딱한 노래만 들어온 북한주민들이 이 노래에 빠져들었음은 물어보나 마나이다.

그러나 이 노래도 가사는 사랑을 고백하는 내용이지만 곳곳에서 노동성과 혁명성이 강조되고 있다.

서울에서 『북한에도 노래방이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북한에는 노래방은 커녕 카세트조차 구경하기 힘들다. 농촌지원을 나가 휴식참에 카세트노래를 틀어주면 모두가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나는 지금도 애창곡으로 「사랑이란 두글자」와 「바람 바람 바람」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약력

▲양강도 혜산·28세

▲혜산 봉흥중고교 졸업

▲김일성대학 정치학과 졸업

▲인민군 정찰국근무(상사)

▲90년7월 서해안통해 귀순

▲연세대 행정학과 4학년 재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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