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에서 열린 남북한간의 차관급회담에서 북한에 우선 쌀5만톤을 제공하는데 일단 합의하고 선적, 인도시기, 도착항구선정, 그리고 북한당국의 공식인수의 확인문제를 협의하는등 쌀지원협상이 급진전되고 있음은 매우 주목할만하다. 이번 쌀협상의 의미는 중요하다. 우선 정부가 북한이 요구하는 규모의 쌀지원요청에 대해 인도적 견지에서 조건없이 제공에 선뜻 동의한 것은 순수한 동족애의 발로라고 봐야할 것이다.이는 결코 값싼 동정이나 정치적인 고려가 담긴 제스처가 아님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또한 이번 협상은 작년 김일성 사망이후 끊겼던 남북접촉이 다시 이어진 것으로 장차 상황진전에 따라서 대화재개는 물론 경제협력의 물꼬를 트는 단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이같은 순수한 뜻, 그리고 비정치적인 분야의 교류기대를 왜곡해서는 안된다.
그런면에서 우리는 북한이 회담서 납북된 우성호선원등의 송환을 약속한 것 역시 이례적이고 인도적인 조처로 평가하고자 한다. 핵파동이래 2년이상 남한당국을 철저히 기피해오던 북한이 쌀협상을 요청한 배경은 짐작할만하다.
올들어 북한은 김영삼 대통령의 두차례에 걸친 쌀지원제의와 나웅배 부총리의 무조건 지원제의를 번번이 거부했다. 하지만 김일성사망 1주기인 7월8일부터 8·15사이의 김정일 권력승계를 앞두고 식량문제는 주민동요를 막고 내부안정을 위한 긴급한 과제가 되어 당국간 쌀협상에 응한것이 틀림없다.
이번 쌀협상이 성사되기까지 일본측의 일부 책략이 작용한 것을 생각하면 불쾌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북한의 식량난을 대북 수교를 앞당기는데 이용하기위해 한국과의 접촉을 권하고 협상을 서두르도록 했으며 곧 쌀을 대거 제공할듯이 언론에 흘려 교란을 획책했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북한이 쌀지원에대해 의구심과 정치적 경계심을 풀고 보다 대국적인 견지에서 받아들일 것을 촉구하고자 한다. 하나도 창피할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다. 북한은 59년 사라호태풍때 이재민을 위해 쌀3만섬을, 62년에 해일피해 어민에 쌀을, 67년에는 매년 쌀 2백만섬과 전기 10억㎾지원을 제의했고, 84년에는 쌀5만섬등을 수재물자로 지원한 바 있다. 북한의 식량사정이 어려워진 뒤에는 77년 정부가 식량제공을 제의했고 90년에는 한국일보사가 모은 사랑의 쌀 8백톤(1만섬)을 제공한바 있다. 어려울때 동족을 돕고 또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한편 대북쌀지원은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조치이기는 하지만 정부는 반드시 북한으로부터 몇가지 원칙에 관해 확고한 다짐을 받을 필요가 있다.
반드시 당국간의 인계인수, 군량미로의 전용금지, 일반주민에 배급후 배급내용의 상세한 통보, 그리고 이를 계기로 경제협력과 비정치적인 분야에서의 인적 물적교류의 문을 열 것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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