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 현지판매법인 설립 등 정공법 주효/「국회 파문」 딛고 비즈니스맨으로 “우뚝”(주)대우의 박태원(38)부장은 대우그룹에서 가장 바쁜 사람중 하나다. 박부장은 까다롭기로 소문난 유럽에 대우자동차를 수출, 선풍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다.
그러나 박부장이 그룹내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자동차수출 성공자체보다 영업의 초임자면서 단시일내에 유럽시장을 개척했다는데 있다. 박부장이 유럽시장개척의 대임을 맡은 것은 지난해 9월. 대우그룹의 브레인들이 모여있던 그룹기조실에서 (주)대우 자동차수출부문으로 자리를 옮기면서부터다. 박부장은 이후 연말까지 3개월동안 유럽공략을 위한 전략들을 다듬고 수출을 위한 전초기지들을 구축했다. 영국 독일 프랑스등 유럽주요국가에 7개의 자동차 현지판매법인을 설립한 것이다. 무수한 밤샘과 빡빡한 해외출장을 강행한 박부장의 남다른 뚝심덕분이었다.
고생한 보람은 현장에서 즉각 실적으로 나타났다. 올 1월부터 수출을 시작한 대우자동차는 유럽시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했고 5월말 현재 5만대를 넘었다. 지금도 2∼3개월씩 주문이 밀려있는 상태여서 올해 목표로 잡았던 10만대 돌파는 물론 15만대까지도 수출은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바쁜 업무속에 「잘나가는」 비즈니스맨 박부장이 한때 공직자였고 엄청난 파란의 주인공이었던 점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90년 3월 당시 동력자원부의 송유관사업담당 사무관이었던 박부장은 국회에서 석유개발공사 최성택 사장의 뺨을 때렸다. 석유사업기금으로 송유관공사설립을 추진하던 동자부와 기금관리주체임을 내세워 공사관할권을 주장하던 유개공이 벌이던 힘겨루기의 한 장면이었다. 사건은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일개 사무관이 국회에서 고위층의 뺨을 때릴 수 있느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또 오죽하면 그랬을까라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러나 동자부는 한달도 채 되지않아 박부장 해임으로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상대가 상대였기 때문이었다.
3년여를 집에서 소일하던 박부장은 93년3월 주위의 추천으로 그룹기조실에 입사하면서 대우와 인연을 맺었다. 과거의 이력과는 상관없이 소신껏 일할 수 있게 해주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대우그룹을 선택한 이유였다.
『성공의 비결은 차량의 성능과 스타일이 유럽취향에 맞은데다 타사처럼 수입대행사에 맡겨두지않고 직접 판매법인을 만든 정공법이 주효했기 때문입니다』
신바람나게 회사의 전략을 브리핑하는 박부장은 2년2개월 밖에 되지않은 올챙이 회사원이라고 엄살을 부렸지만 벌써 프로비즈니스맨의 경지를 체득한 듯했다.<이재열 기자>이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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