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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학 이끈 거목(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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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학 이끈 거목(사설)

입력
1995.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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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단은 현대문학의 한 중심을 잃었다. 작가 김동리씨의 타계는 한국현대문학사에서 민족문학을 이끌어온 큰 기둥이 사라짐을 의미한다.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 6·25와 군사정권시대를 거치면서 거듭된 사상논쟁과 인간적인 핍박 속에서 순수문학과 휴머니즘의 가치를 일관되게 붙들어 온 그의 문학적 업적과 작가 정신은 우리 문학의 위대한 성과로 길이 기록될 것이다.그는 「토착적이고 민속적인 소재를 완전한 현대적 소설미학으로 수용해서 민족문학의 전통을 확립하고 확대시킨 작가다」(「순수문학의 진의와 휴머니즘」­이태동). 「황토기」 「무녀도」등 그의 대표적인 작품에서는 신라때부터 전승돼 온 민족신화의 정신적 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그가 작가로서 명성을 얻은 후 발표한 장편 「사반의 십자가」는 그의 이런 민족적·토착적 환경과 기독교적 교양이 조화를 얻어 성공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가 작품활동을 통해 주장한 강렬한 토속적 민족주의는 오늘날 탈냉전시대 유럽사회를 중심으로 부활하고 있는 신민족주의와 그 끝이 서로 닿는다고 할 수 있다.

그는 54년에 쓴 평론 「민족문학론―인간주의 민족문학의 제창」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표방하는 민족문학 즉 인간주의적 민족문학은 한마디로 말하면 곧 세계문학으로서의 한국문학이란 뜻이다』. 실로 김동리씨는 우리문학을 세계문학의 반열에 끌어올리려고 노력한 작가였고 그래서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그는 참여문학의 반대편에 서서 순수문학을 강조해 온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작품이 모두 사회문제를 외면한 것만은 아니다. 그의 데뷔작인 「화랑의 후예」나 「등신불」같은 단편들은 사회성과 역사의식이 짙은 작품으로 분류될 수 있다. 다만 사회문제를 고발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인간정신의 고향으로 부터의 추방과 회귀문제에 집착하고 있는 점이 다르다.

해방직후 그는 극한의 좌우익대립 속에서 조선공산당 계열의 문학가동맹에 대항하여 한국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하고 초대회장을 맡아 한국문학에서 민족적 휴머니즘을 수호하는 기수가 되었다. 그 이래 그는 우리문단의 지주로서 한국문학을 대표해왔다. 오늘의 한국문학의 영광은 그의 활약없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군사정권시대 지식인으로서의 책무를 외면해 왔다는 비판과 불우한 말년의 오랜 침묵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의 죽음을 새삼스럽게 슬퍼하는 것은 광복50년의 한국문학이 그의 퇴장으로 이제 한 매듭을 짓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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