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호도 노동자 통해 중국 봉건사회 비극 풍자/국가·민족의식 일깨워루쉰(노신·1881∼1936)은 20세기 중국문학의 거장이다.
24세때 일본의 센다이(선태)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2년만에 도쿄(동경)로 돌아가 독일협회학교에서 문학공부를 시작했다. 루쉰은 소설집 「눌함」의 자서에서『러시아의 스파이 노릇을 했다는 이유로 일본군에게 참수당하는 동포를 무덤덤한 얼굴로 구경만 하는 중국인의 모습을 영화속에서 보았다. 중국인의 정신을 변화시키는 것이 가장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고 이를 위해서는 문학이 가장 적당한 수단이라고 판단했다』고 썼다. 「의학구국」의 뜻이 「문학구국」으로 바뀐 것이다.
루쉰은 1918년에 첫 작품 「광인일기」를 종합계몽잡지 「신청년」에 실은 뒤 「공을기」 「풍파」 「고향」등의 단편소설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문학은 쉬운 표현을 사용하여 사회성을 가져야 한다」는 천두슈(진독수)와 후스(호적)의 「문학혁명론」을 실천해 나갔다.
그 뒤 1921년 베이징(북경)의 한 신문에 연재된 중편소설「아Q정전」은 작가 루쉰의 지위를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이름도 성도 뚜렷한 직업도 없는 날품팔이 노동자 아Q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봉건적인 중국사회가 만들어 낸 민족비극을 매섭게 풍자한 「아Q정전」은 중국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 주었다. 자신의 현실을 똑바로 보지 못한 채 항상 스스로를 속이며 현실을 호도하는 주인공 아Q의 모습에서 중국인들은 스스로의 얼굴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루쉰은 이 작품을 통해 중국인들이 국가와 민족에 대한 의식을 잃어버린 것을 슬퍼하며, 중국인들의 각성과 굳은 결의를 촉구코자 했다. 이후에도 그는 현실의 보수적인 습속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소설, 평론성을 지닌 짧은 수필을 끊임없이 발표했다. 『지상에는 본래 길이 없고 그 곳을 걷는 사람이 많으면 길이 된다』는 자신의 신념을 실천에 옮기기 위함이었다.
폐병에 걸려 56세의 나이로 숨졌을 때 루쉰은 이미 「신중국 정신건설의 지주」로 중국인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학생과 시민등 조문객이 1만명에 이르렀고, 「민족혼」이라는 검은색 글씨가 씌어진 흰천이 덮인 그의 관은 7천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만국공묘의 한켠에 묻혔다.<최성욱 기자>최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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