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의 흐름 꿰뚫는 뚜렷한 체계/독특한 관점 제시 지적 당당함 인상적박홍규 교수의 글과 강의록으로 이루어진 「박홍규전집」의 처음 두 권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것을 살 때만 해도 언젠가 시간을 내서 읽어 보겠다는 막연한 생각만 가졌었는데, 지난주 때이른 종강으로 생긴 시간을 이용해 우선 이 책을 읽어 보겠다고 나선 것은 간행위원회가 쓴 서문의 다음과 같은 문장을 먼저 읽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박홍규선생의 저술과 함께 우리의 사상과 철학도 이제 서양철학의 단순한 수용의 단계를 넘어 스스로 조회와 탐구의 대상이 될 원전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것이 작고한 스승에 대한 제자들의 추모의 염이 빚어낸 과장일 것으로 생각했다. 사실 생전의 박홍규교수를 두어차례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얌전하고 말수가 적으며 그나마 눌변이라는 정도의 인상만을 주었다.
그러나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하자 그는 완전히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주로 플라톤의 텍스트들을 대상으로 하는 그의 강의들의 밑에 서양철학의 흐름 전체를 보는 그 나름의 뚜렷한 틀이 깔려 있었고 , 그 틀 위에 서서 자신의 독특한 관점을 서슴지 않고 내세우는 그의 지적 당당함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의 「강의」라는 것도 사실은 제자들과의 토론으로 이루어져 그 자체가 플라톤의 여러 대화편을 연상시켜 주었다. 특히 그의 「틀」을 잘 보여주는 「고별강연」과 이 「고별강연」자체를 텍스트로 한 「고별강연검토」부분은 이 책을 읽는 진미를 맛보게 했고 무엇때문에 간행위원들이 서문에 그런 표현을 썼고 또 이 책을 이런 형태로 펴내는 데에 그렇게 정성을 쏟았는지를 짐작케 해주었다.
그의 주장들 중에는 흥미있는 것들, 그리고 내가 어렴풋이 알고 있던 내용을 새롭게 생각케 해주는 것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시간과 공간및 운동의 관계에 대한 그의 견해나 유클리드기하학에 대한 그의 주장은 내가 완전히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흥미있었다. 또 그의 강의는 왜 「티마이오스」가 단지 「우화」형식으로 제시되는가 하는 내 자신 강의에서 계속 다루었던 주제에 대해 더 생각할 수 있게 해주었고 왜 「방황하는 원인」이라는 것이 내게 그렇게 이해하기 힘들 수 밖에 없는 개념이었는지를 알게 해주었다.
물론 이 책의 내용중 많은 부분이 내게는 너무 힘들어 오랜 시간을 들여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았고 그의 주장들중 많은 것들이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음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준(그리고 앞으로도 주게 될)이같은 새로운 느낌과 많은 깨달음을 생각하면 그것을 읽는데 들인 노력과 고통은 별로 아까울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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