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30일 중국은 처음으로 이동형 장거리미사일 「둔펑(동풍)」을 발사실험했다. 같은 날 나토와 러시아는 처음으로 공식 안보협의를 시작했다. 그리고 6월2일에는 워런 크리스토퍼 미국무부장관이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와 유럽연합(EU)을 통합하는 범대서양 자유무역지대(TAFTA:TRANS―ATLANTIC FREE TRADE AREA)의 창설을 제안했다. 이러한 움직임들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런 추세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중국은 이미 미국 전역을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고정형 미사일은 상대방의 선제공격에 취약하기 때문에 이동형 미사일이 없이는 전략적 억지력을 기대할 수 없다. 중국은 이제 미국 서부까지 공격할 수 있는 이동형 미사일을 배치할 수 있게 됨으로써 미국과의 군사력균형에서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게 되었다.
미국은 소련의 전략핵능력이 미국수준에 도달했던 1971년 중국에 접근하는 전략을 행동에 옮겼다. 키신저는 이른바 「중국카드」를 이용함으로써 소련을 견제한다는 구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냉전의 종식과 소련의 해체, 그리고 중국경제의 급성장으로 소련보다 중국이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토가 러시아와 안보협의를 시작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나토는 냉전이 종식됨으로써 존재이유를 상실하는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나토는 오히려 더 공격적인 자세로 새로운 목적과 기능을 구상하게 되었고 특히 동유럽을 나토의 틀 안으로 흡수하는 가능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헝가리와 폴란드같은 나라가 나토에 가입하게 되면 러시아는 확대된 나토를 반러시아동맹으로 간주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클린턴행정부는 결국 러시아의 입장을 존중하기로 하고 동유럽국가들을 나토에 가입시키지 않는 대신, 보다 느슨한 「평화를 위한 파트너십(PARTNERSHIP FOR PEACE)」이라는 특수관계를 설정하고 결국은 러시아까지도 가담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 러시아와 나토 사이의 안보협력이 얼마만큼 진전될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과거에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카드」를 사용했던 미국이 「소련의 위협」은 사라지고 「중국의 위협」이 커지고 있는 새로운 상황을 맞아 러시아를 나토에 연결시킴으로써 중국을 고립시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발전이다.
경제적으로는 만일 TAFTA가 성공한다면 세계경제경쟁은 쉽게 끝이 난다. 유럽과 북미지역을 합치면 인구 7억7천만명에 세계의 최첨단 기술, 가장 다양하고 풍부한 자원, 가장 숙련된 노동인구, 가장 창의적인 경영능력, 가장 큰 구매력을 지닌 시장…. 두말할 것도 없이 21세기는 TAFTA에 속하게 된다. 물론 TAFTA는 농산물문제등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영국, 독일, 캐나다등이 찬성하고 있는 만큼 미국이 적극 추진한다면 반드시 불가능하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같다.
이렇게 보면 포스트냉전 세계질서는 미국이 나토를 기본틀로 유럽과 러시아를 한데 묶는 안보구조와 경제적으로는 미국이 NAFTA와 EU를 통합함으로써 북미와 유럽을 하나의 경제공간으로 구성하는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다시 말하면 냉전이후 미국이 구상하는 세계질서는 미국이 세계의 기독교권을 하나로 묶는 형태로 될 가능성이 있다. 만일 미국이 진정으로 이상과 같은 구상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된다. 결국 미국은 냉전시대 이데올로기 대결보다 훨씬 더 무서운 종교적·문화적 대결을 초래하게 된다. 그리고 헌팅턴교수가 말하는 문명의 충돌보다도 더 악랄한 백인세력권과 유색인종간의 갈등을 의미하게 된다. 과연 이런 악몽의 시나리오가 미국이 원하는 미래인가?
미국은 더 늦기 전에 기독교권의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중국을 견제하기위해 러시아카드를 활용하는 것은 극히 위험한 전략이다. 자칫 잘못하면 중국과 일본의 반서방연합을 불가피하게 만들고 나아가서는 이슬람세력과 비이슬람세력과의 「편의의 결혼」을 가져올 수도 있다. 미국은 APEC에서 TAFTA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특히 한국정부가 NAFTA와 밀접한 관계가능성을 모색했을 때 미국이 냉담한 반응을 보인 것을 생각하면 미국은 과연 APEC을 중요시하는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정부도 세계질서문제에 대해 숙명적인 것으로 보고 피동적으로만 대응할 것이 아니라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나갈 필요가 있다. 미국이 TAFTA에 대한 구상을 설명하도록 요구해야 하며 우리의 견해도 밝혀야 한다. 그리고 중국의 장래와 동북아 세력균형문제에 대해서도 우리의 입장이 있어야 한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는 것을 아무 저항없이 방관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사회과학원장>사회과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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