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못만나지만 「인간의 우수」에 짙은 교감어찌 보면 이런 글을 쓰는 데는, 이미 움직일 수 없는 정평이 내려진 동서의 명시나, 애국시 또는 저항시같은 것을 인용하는 것이 안전하고 무탈한 일일 듯도 하다. 특정한 현역시인을 다룬다는 것은, 세상에는 사람 사이에 친소관계가 있고 문학적 입장도 다를 수가 있어 눈치없는 일이 됨직도 하다.
최근 김후란 시인으로부터 새 시집 「우수의 바람」이 보내져 왔다. 나는 김 시인의 새 시집이 나올 때마다 맨 먼저 받아보는 사람의 하나로 자처하고 있는 터이라 매우 반가웠다. 또한 시집의 제명이 「우수의 바람」이고, 수록된 시 각 편에 깃들인 시상 또한 일관해서 제명 그대로 우수의 바람이 흐르고 있어 각별한 감회를 갖게 하였다.
김 시인과 나와의 해후는 무슨 극적인 만남으로 설명될 만한 것은 없다. 자연스럽게 여러 계제에 만나다 보니 서로의 사고와 인간에 대한 이해가 축적되어, 실제로는 상당히 격조하면서도 감성적으로는 매일같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하다고나 할까. 평소 김시인에 대해서는, 마치 노천명의 시 「사슴」 속에 표현된 사슴이 지닌 속성들을 함께 머금은 듯한 이미지를 느껴오던 터이다. 한 마디로 우수를 머금은 미소가 김시인의 대표적 표정인 듯도 하다. 그러던 차에 김 시인의 이러한 이미지에 핍진하게 걸맞은 제명의 시집이 나왔으니 감회가 유별할 수밖에 없다.
김 시인의 이번 시집은 일곱번째로 아는데, 첫 시집에서 최근의 시집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변함없이 침착하고 무절제한 흥분이 없다. 키플링의 「정글북」에서이던가 아이가 멋 모르고 불에 데는 것과 같은 무지가 없고 억지가 없다. 그의 시에는 오스카 와일드적인 처절한 저항은 없으나, 그대신 진지한 인간설득이 있다. 이번 「우수의 바람」에서 그는 시인,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원숙한 경지를 티없이 농축해서 그려내고 있다.
소개한 「바람 고리」에는 인간의 숙명이 순환고리로 이어져 있어, 불교의 윤회설이나 기독교의 부활성을 연상케 해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전체 흐름의 바닥에는 잔잔한 우수가 길게 깔려 있다. 우수란 단순한 멜랑콜리가 아닌, 인간생명의 유한성을 잠재적으로 의식하며 생명의 광채를 사랑하는 인간의 궁극적 감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고시인 일모 정한모 선생이 예술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난 뒤부터는 작가의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한 기억이 난다. 이 말에 용기를 얻어 시의 형식도 운율도 모르는 문외한, 더구나 사물의 논리만을 생각하는 버릇이 있어 감정이 메마른 사회과학도가 감정의 세계가 주공간인 시에 대해서 주제넘은 감상 몇 마디를 적고 보니, 이 시를 모독한 결과가 되지나 않았을까 걱정스럽다. 「우수의 시인」 김시인의 필명 「후란」이 고랭지 식물처럼 청초하여 잡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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