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임금·고용 차별풍토 깨야/교과과정도 다양·내실화 필요교육개혁위원회는 이번 교육개혁안이 정착되면 학벌중심사회가 능력중심사회로 바뀐다고 전망했다. 교과과정이 다양화, 특성화되고 국가기술자격제도가 개선돼 실무형 전문가가 양성되면 학벌위주의 임금, 고용관행은 자연히 불식되리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제시되지는 않았지만 사회에 만연돼있는 「학벌제일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은 이번 교육개혁안 곳곳에서 감지할 수 있다. 현장중심의 실무요원 양성을 위한 단설전문대학원이나 생업기술교육을 겨냥한 신대학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가장 획기적인 것은 대학설립의 준칙주의를 들 수 있다. 잘만 시행되면 대학의 내실화를 기할 수 있고 이는 곧 「학벌=출세」를 뜻하는 사회통념을 흔들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즘 논란이 되고있는 종합생활기록부가 시기상조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당성을 얻고있는 이면에는 한가지 잣대에 의해 사람이 평가되고 인생이 좌우되는 「사회적 폭력」은 사라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모범답안형 인간」을 조장하는 획일적 인간관은 사회 각계에 퍼져있다. 기업이 대표적 예이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고교생이 암기와 주입식 교육에 찌들어 있는 것처럼 학문을 연마해야 할 대학생이 상식책을 붙들고 도서관에서 씨름하는 모습은 왜곡된 교육의 단면이다.
다행히 기업에도 최근들어 「사람평가」에 대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있다. 학벌중심의 연공서열이 사라지고 「연봉제」를 앞세운 능력위주의 인사풍토가 이러한 변화의 주역이다. 일부에서는 지나친 경쟁심으로 인한 업무의 효율성 저하를 걱정하기도 하지만 다양한 능력이 고려되고 적재적소에서 자아실현의 기회가 확대된다면 이런 부작용은 지엽적인 문제일 것이다.
지난해 현대 삼성 LG 대우 선경등 5대 재벌그룹 임원들의 출신대학비율은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이같은 변화의 조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서울대가 전체의 25.4%인 3백68명으로 가장 많고 연세대가 1백55명(10.7%), 고려대가 1백33명(9.2%)으로 세칭 명문대가 여전히 높은 점유율을 보였다. 그러나 눈에 띄는 것은 한양대 성균관대 인하대등 중위권 대학의 약진이다. 특히 한양대는 공과대학의 강세로 서울대에 이어 점유율 2위를 차지했고 전체적으로도 비명문대 비중이 급격히 높아졌다. 이사승진 평균연령도 점점 낮아지는 추세이다. 30대 이사의 탄생은 과거 50세에 육박했던 평균연령과 비할때 격세지감을 가지게 한다.
가장 안정적인 직장으로 꼽혔던 금융계도 예외는 아니다. 명예퇴직제나 직급별 승진정년제등 능력이 우선되는 제도가 잇따라 도입되고 일부 보험사에서는 「대리급 지점장」까지 나왔을 정도다.
그러나 아직 우리주위에는 학벌풍토로 인한 사회적 해악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평균적 학벌로는 좋은 회사에 입사하기 어려워 보다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기 위한 유학이 늘면서 고학력 실업자도 늘고있다. 교육정도별 임금수준은 여전히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93년 기준으로 고졸자의 임금수준을 1백으로 봤을 때 대졸자는 1백61이었고 전문대졸은 1백9, 중졸은 88이었다. 무엇보다 능력에 앞서 학벌에 따라 보수가 달라지는 이같은 풍토가 개선되지 않고서는 학벌위주의 사회가 결코 타파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을 평가하는 의식이 개혁되기 위해서는 사람을 양성하는 학교도 변해야 하지만 사람을 활용하는 사회현장도 함께 변해야 한다. 박영식 교육부장관이 교육개혁안 발표 직후 대기업의 입사시험 폐지를 권고하겠다고 한 말도 이같은 필요성 때문이었다.<황유석 기자>황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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