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신해혁명의 발상지/무한은 반골의 고장(중국 리포트:7­1)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신해혁명의 발상지/무한은 반골의 고장(중국 리포트:7­1)

입력
1995.06.07 00:00
0 0

◎최근 반정비밀결사 적발 충격도장강 중류에 자리잡은 후베이(호북)성의 성도 우한(무한)은 중국 근대사 고비마다의 영욕이 점철된 「반골의 고장」이다. 중국 최초의 공화정을 연 신해혁명의 도화선이 된 무창기의가 바로 이곳에서 일어났다. 1927년 국공합작에 실패한 중국공산당이 「8·7회의」를 열어 마오쩌둥(모택동)의 「호남농민운동조사보고서」를 토대로 중국혁명을 농민혁명으로 규정한 곳도 우한이다. 최근 최고지도자 덩샤오핑(등소평)의 사망임박설등 정정혼란의 와중에 우한의 지식인들은 반정부 비밀결사를 조직했다가 적발돼 내외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시내 우창(무창)구 열마장에 위치한 「신해혁명 무창기의 기념관」에는 1911년 청조의 보로운동(열강의 철도부설권 요구에 굴복한 청조에 반대한 철도보호운동) 진압을 반대하면서 무창기의를 일으켜 호북군정부를 세운 신식군대의 유적이 남아있다. 기념관은 당시 군정부 자리에 신해혁명 70주년이던 81년 세워졌다. 당시 해외에 있으면서 삼민주의를 기치로 반청운동을 전개해 무창기의와 신해혁명을 이끌어낸 쑨원(손문)은 중화민국 선포 이듬해인 1912년4월 혁명의 발상지인 이곳을 찾았다. 기념관 예당은 당시 쑨원 환영집회에 쓰인 오색국기와 18성군기가 아직도 걸려있고, 쑨원과 송경령의 결혼서약서, 쑨원의 유언 (혁명은 아직 성공하지 않았다. 동지들은 분발하라<혁명상미성공 동지잉수노력> )이 남아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장강을 경계로 북부의 한양(한양)과 한커우(한구), 강남의 우창(무창) 3도시가 합쳐 생긴 우한은 수륙교통의 중심인 지리적 조건 때문에 늘상 중국 역대왕조의 쟁탈의 과녁이었다. 그 때문에 혁명의 고장이기도 한 우한은 개방이후에는 중국 3대 철강공업지역의 하나로 기계 전력등 중공업도시로 발전하고 있다.<우한=하종오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