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의 핵」 등 위태에 상황 당분간 안개속/서울북경 1시간50분대… 한중관계 격변홍콩특파원으로 떠났다가 베이징(북경)특파원으로 돌아 왔다.
홍콩특파원 10개월을 포함, 중국특파원으로 활동했던 92년 4월부터 95년 5월까지의 한중관계의 변화는 상전벽해라는 고사성어를 어김없이 떠올리게 할 정도로 숨가쁜 것이었다. 92년 5월 처음으로 중국땅에 발을 디뎠을 때는 취재기자가 아닌, 별지로된 입국비자를 신주모시듯 해야했던 미수교국 난차오센(남조선)의「여행객」이었으나 떠나올 때는 일본,미국에 이어 3번째로 많은 특파원을 주재시키고 있는 따한민궈(대한민국)의 「창주지즈(상주기자)」의 일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베이징공항을 이륙한지 1시간 50분만에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3년간의 해외생활을 마친뒤의 귀국이었으나 느낌은 지방출장을 끝내고 돌아온 것 같았다. 불과 6개월전만해도 중국에서 귀국하는 주재원들은 그래도 외국에서 귀국한다는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베이징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톈진(천진)공항을 이용해야했으며 비행시간도 상하이(상해)를 경유하느라 3시간이상 걸렸기 때문이다. 3년전, 평양과 함께 지리적으로는 가까우면서도 지구 반대편 쪽에 있는 것처럼 멀게 느껴졌던 베이징이 이처럼 하루가 다르게 우리의 옆으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3년간의 한중간의 급속한 관계증진은 그러나 중국변화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92년 초 덩샤오핑(등소평)의 남순강화가 촉발시킨 중국의 시장경제화는 이제 되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선천(심), 주하이(주해)등 경제특구는 더이상 격리된 점이 아니다. 16년전 점에서 시작한 변화는 선을 거쳐 이제는 대륙전체라는 면을 변화시키려 하고 있다. 지난 한해동안 전인대에서 제정된 수십건의 각종 법률들은 시장경제로의 개혁이 다른 한편으로는 인치의 중국을 법치의 사회로 바꾸려는 미답의 야심적인 실험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3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일당독재국가인 중국에서 정치는 모든 것을 지배한다. 그러나 정치상황의 투명도는 그 때나 지금이나 뿌옇다.
흔히 홍콩은 「중국의 창」이자 중국의 맥박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홍콩이라는 창을 통해 보는 중국의 모습은 실제보다 뒤틀려 있거나 과장되어 있고 오진도 많다. 86년이후 여러차례 「등소평 죽이기」를 일삼아온 홍콩언론은 10개월 남짓 주재하고 있는 동안만도 등을 두차례 이상 「죽였으나」 등은 2년도 더 지난 지금 여전히 살아있다. 베이징의 상황은 「등잔밑이 어둡다」가 아니라 「등잔밑은 깜깜하다」라는 표현이 오히려 적당하다.
귀국 며칠을 앞두고 터져나온 천시퉁(진희동) 베이징시 당서기의 숙청은 한동안 각 세력이 균형을 이루며 안정을 유지해 왔던 중국 정국이 다시한번 안개상황속에서 요동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억측을 말고 있는 그대로 보아 달라」는 것이 중국측 인사들의 주문이지만 새벽 2시에 신화통신을 통해 사건의 중요도와는 거꾸로 짤막하게 발표하는 예사롭지 않은 중국당국의 자세는 그러한 주문을 정중히 사절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남순강화때도 그랬다.『시장경제를 자본주의와 동일시하지 말라』 등의 「혁명적 발언」은 런민르바오(인민일보)가 침묵하는 가운데 마른 초원에 던져진 불꽃이 되었고 그 불꽃은 시장경제화라는 「요원의 불길」이 되어 현재 대륙전체를 뒤덮고 있다. 중국 전역을 10년간 동란상태에 빠지게 했던 문화대혁명도 시작은 문예비평이었다. 때문에 중국정세를 파악하기위해서는 오동잎을 보면서 가을이 왔음을 알아야한다. 등의 정치적 유고상태가 점차 중증이 되어가는 상황에서 천시퉁의 숙청을 단순한 탐관의 처리로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16년간 중국변화의 핵이었던 등은 이제 죽음을 앞두고 있다. 금세기초에 태어난 등의 죽음은 그대로 중국의 20세기가 끝남을 의미한다. 변화에 변화를 거듭해온 중국은 이제 가장 역동적이며 위기와 기회를 함께 지닌 변화의 중심에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유동희 기자>유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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