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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더비 한국예술전문위원 구지영씨(달리는 지구촌 한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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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더비 한국예술전문위원 구지영씨(달리는 지구촌 한인들)

입력
1995.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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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미술품 진가 세계에 심어준 “눈썰미”◎고려불화 186만불 받아 단독경매 정착 발판마련/“필부들이 만든 민속품 취급 푸근한 한국미 보급하고파”

2백51년 전통의 세계 최대 미술품 경매회사 소더비는 지난 91년 한국부를 처음 개설했다. 뉴욕 맨해튼에 자리잡고 있는 소더비는 한국부 개설과 함께 한국예술 전문위원에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젊은 한국인 여성을 채용했다. 그 이전까지 한국 미술품은 세계 경매시장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고, 한국예술품 취급도 일본인 전문위원이 부업삼아 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간혹 몇점씩 취급되는 미술품 역시 기껏해야 중국이나 일본 미술품 경매에 곁다리로 끼는 정도였다.

이 젊은 한국인 여성이 행운을 몰고 왔음인지 그해 10월 소더비가 시도한 한국 미술품 단독경매에서 14세기 고려불화가 1백86만달러(약 14억8천8백만원)의 고가에 팔려나갔다. 이 경매는 한국미술품에 대한 세계시장의 인식이 달라지는 계기가 됐음은 물론 매년 두차례 한국미술품 단독경매가 정착되는 밑거름이 됐다.

소더비의 한국예술 전문위원 구지영(27)씨는 「눈이 있다」는 말을 듣는다. 그가 하는 일은 경매에 내놓을 물건을 찾고 골라서 가격을 매기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예술품의 진위와 가치를 판별하는 감정 작업이 가장 중요한데, 이 일은 타고난 눈이 없어선 안된다. 그의 눈 덕분에 횡재한 사람도 숱하다. 할머니가 남긴 골동품들을 처분하려고 온 집안의 물건을 사진 찍어 보낸 어떤 남부 미국인은 화장실 변기위에 놓인 재떨이 덕분에 뜻하지 않은 떼돈을 벌기도 했다. 사진을 들여다보던 구씨가 다른 물건과 함께 우연히 찍힌 재떨이가 「물건」임을 알아봤고, 직접 가져오게 해 감정했다. 그 결과 12세기 고려청자 탁잔으로 판명됐고 이 운좋은 사나이는 6만달러를 챙겼다.

눈만 있어서 되는 것도 아니다. 눈이 손과 따로 놀면 그도 소용없다. 뉴욕 배서대학에서 미술역사를 전공한 그는 당초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계속하려 했었다. 그러다 친지의 강력한 권유로 소더비에 입사하게 됐는데, 그만 이 일에 흠뻑 빠져들어 공부를 뒷전으로 미루게 됐다. 회화와 같은 특별한 품목이 아닌 경우에는 보기만 해서 되지 않고 반드시 손으로 만져서 감정을 해야하는데 이 과정이 보통 황홀한 게 아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손에 낙인같은 느낌을 남기고 간 12세기 고려 흑백상감 주전자를 두고두고 잊지 못한다. 3년전 경매에서 26만달러에 팔린 큼지막한 참외모양의 그 주전자는 8백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역사의 향기에 감싸인 장인의 정신을 그에게 전해 주었다. 9살때 미국에 이민온 구씨는 스스로를 가리켜 『어쩔 수 없는 한국사람』이라고 말한다. 같은 동양미술이지만 일본 미술은 너무 꼼꼼하고 조화로워서 오히려 사람을 답답하게 만들고, 중국 미술은 지나치게 요란하고 화려해서 정이 붙지 않는다. 반면 한국 미술품들은 그렇게 푸근하고 정겨울 수 없다. 여유있고 자연스러우며 정감이 넘쳐 흐른다. 그중에서도 고려말 조선초의 불교미술은 은은하면서도 휘감는듯한 매력이 어디에도 비교할 데가 없다.

구씨가 소더비에서 꼭 해보고 싶은 일은 민속품 취급이다. 고려와 조선의 필부필부들이 만들었던 생활민속품은 그 모두가 곧 예술이고 다른 미술품에 비해 값도 훨씬 저렴하므로 더많은 사람이 나눠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렇게 되면 한국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한인 2세와 3세들이 우리 것에 접할 기회가 많아지고 이해와 사랑의 폭도 넓어질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뉴욕=홍희곤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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