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정치가들의 회고록 출간이 잇따르고 있다. 베트남전 종전 20년을 앞두고 지난 4월 로버트 맥나마라 전미국방장관이 회고록을 내 파문을 일으킨데 이어 소련의 마지막 총리이자 재무장관을 지낸 발렌틴 파블로프가 구소련 몰락직전 미소간 갈등을 폭로하는 회고록을 곧 출간할 예정이다. 또 중동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94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은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최근 출간된 회고록을 통해 중동평화회담의 뒷얘기와 정적이자 동지이며 노벨상 공동수상자인 라빈총리와의 갈등을 털어놓고 있다.◎미·소 외교비사/구소 마지막 총리 발렌틴 파블로프/“구소붕괴 뻔히 알면서도/미선 방관으로 일관했다”
발렌틴 파블로프 구소총리는 회고록 「미 소 외교비사」출판에 앞서 월간 「모스크바」에 비밀외교의 주요부분을 공개, 90년당시 미국이 소련의 붕괴를 알면서도 외면했다고 폭로했다. 그 내용에 의하면 파블로프는 당시 미국의 초청을 받고 빅토르 게라센코 중앙은행총재와 함께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 방미재가를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파블로프는 비밀리에 제임스 베이커 미국무장관을 만나라는 지시를 받았다.
베이커를 만난 파블로프는 소련경제의 시장체제로의 원만한 전환문제를 거론하고 개혁을 위해서는 2백50억달러의 경제원조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소비재등 각종 상품을 수입할 수 있는 자금과 식품가공공장등 경공업에 필요한 설비와 장비를 구입할 수 있는 차관, 군수산업의 민수화와 중공업투자로 차관을 상환할 수 있도록 하려면 2백50억달러가 필요하다고 설득했다.
그러나 베이커는 『소련과 시장경제체제 전환문제를 논의할 생각이 없다』며 『미국정부는 소련의 경제보다 정치적 변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베이커는 또 『소련이 1년에 쿠바의 카스트로정권을 위해 80억달러, 베트남공산정권에 80억달러, 동독의 주둔군에 80억달러등을 쓰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런 곳에서 발을 빼면 필요한 자금이 생길 것이며 소련경제가 붕괴되면 미국은 이익이 될뿐』이라는 말까지 했다.
결국 파블로프는 빈손으로 귀국하고 말았다. 이후 소련은 91년 8월 붕괴됐고 러시아는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는 개혁정책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소련이 요청한 2백50억달러보다 10억달러가 적은 2백40억달러를 개혁을 위해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으나 그 약속은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모스크바=이장훈 특파원>모스크바=이장훈>
◎평화를 위한 투쟁/이스라엘 번영공신 페레스 외무/“전쟁불가론 말한적 없다”/라빈과의 불화설 해명도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외무장관의 회고록 「평화를 위한 투쟁」(BATTLLING FOR PEACE·랜덤하우스간·3백50쪽)은 출생과 어린 시절, 93년 중동평화회담 체결에 얽힌 뒷얘기는 물론 정치적 라이벌인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총리와의 정치적 갈등과 대립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페레스는 벨로루시에 있는 유태인정착촌의 부유한 상인집에서 출생, 열살때 팔레스타인 땅으로 이주했으며 10대시절에는 도스토예프스키식의 공산주의에 심취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엔 소박하게도 낮에는 밭에 나가 일을 하고 저녁시간에는 식당에서 즐겁게 노래 부르고 밤에는 말을 타고 농장을 감시하는 튼튼한 농사꾼이 되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이같은 어릴 때의 꿈과 달리 페레스는 정치에 대부분의 인생을 바쳐 이스라엘군을 창설하고 이스라엘을 핵보유국으로 만드는 업적을 이루어 이스라엘번영의 일등공신이 됐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를 끄는 부분은 라빈과의 40여년간에 걸친 불화설에 대한 해명. 페레스는 네번에 걸친 선거에서 계속 패배해 「만년낙선꾼」으로 낙인찍혔는데 92년에는 노동당의 당권까지 라빈에게 양보하는 수모를 당했다.
라빈은 79년에 출판한 회고록을 통해 벤구리온대통령이 자신을 참모총장으로 지명했을 때 페레스가 반대했으며 67년 제1차 중동전을 앞두고는 이스라엘이 전쟁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는 주장을 했다고 기록한 바 있다.
그러나 페레스는 『라빈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반박하면서 결코 그의 명예를 깎아내리려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페레스는 또 라빈이 자신을 평화협상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는 소문을 일축하면서 그가 자신에게 협상에 참여할 기회를 부여했다고 밝혔다.<여동은 기자>여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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