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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30주기전을 보고(박완서 칼럼/화요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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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30주기전을 보고(박완서 칼럼/화요시평)

입력
1995.05.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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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박수근 30주기 기념전에 가보았다. 그가 타계한지 삼십년이 되는 동안 몇 번의 유작전이 있었고, 그중 두 세번은 나도 놓치지 않았다. 유작전이니까 작품경향이나 기법의 변화가 있을 수는 없건만도 볼 때마다 느낌이 달랐다. 물론 그때그때 전시된 작품의 양이나 질이 달랐던 것은 사실이나 나의 느낌이라는 것은 그런 것을 식별하는 감식안 하고는 다른 순전히 감정적인 것이었다.내가 그의 유작전을 처음 본 게 60년대말이었는지 70년대초였는지 잘 생각나지 않지만 근래의 전시회에 비해 분위기는 상당히 썰렁했었다. 하지만 그의 그림값이 비싸다는 것을 그때 거기서 처음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놀라움이 지나쳐 억울하고 분해서 가슴이 아릴 지경이었다. 50년대초, 한때 그와 한 일터에서 일한 적이 있어서 그가 얼마나 신산스럽고 굴욕적인 환경에서 싸구려 그림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나를 보아왔고, 죽는 날 까지도 그림으로 호강 한번 못해보고 그저 근근히 생계를 유지해온 게 고작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후에 오른 그림 값이 남 좋은 일만 시킨 것같아 억울했던 것이다. 나의 속물근성으로는 사후의 영광보다는 생전에 명성도 좀 누리고 경제적 풍요도 좀 즐기지 못한 게 아쉽고 분해서 정작 그림은 안중에도 없었다.

다음에 본 유작전은 20주기 기념전이었을 것이다. 대성황이었고 화집을 통해 낯익은 그의 좋은 그림들을 실제로 보는 기쁨이 각별했었다. 얻어들은 풍월이지만 그가 창출해낸 독창적 화면이 화강암의 재질과 유사하다는 설에 끄덕끄덕 공감하기도 하면서, 그러나 여전히 도대체 저만한 그림을 하나 소장하려면 얼마가 있어야 되는지, 돈이 있다고 해도 내놓을 소장자가 과연 있기나 할까 따위 그림 값과 관련된 생각을 떨치지 못했던 것같다. 그런 생각은 그가 생전에 누리지 못한 걸로 엉뚱한 사람들이 이득을 보고 있다는 지극히 나다운 속물근성에 연유하고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겠다.

이번 30주기전을 보며 행복했던 것은 처음으로 그의 그림을 소장한 사람들에 대한 시기심이나 갖고싶단 욕심 없이 볼 수 있어서였다. 그의 그림을 천천히 둘러보는 사이에 마치 오랜 객지생활로 상처받고 황량해진 심신으로 고향집에 돌아가 고단한 몸을 쉬다가 문득 해어져 너덜대는 벽지사이로 드러난 흙벽의 균열을 보며, 그 구수한 냄새를 맡았을때 뼛골까지 스며옴직한 평화와 비애를 맛보았다. 평화가 거의 완벽했던 것은 비애가 스며있기 때문이었다.

어떤 고명한 화가가 그 방 가득히 금은 보화를 쌓아놓는다 해도 거기 걸린 그림 한 점과 안 바꿀 거라는 평을 했다. 그건 이미 그의 그림이 금전적인 가치를 초월했단 소리이다. 그렇게 되면 이미 누구의 소유냐까지 초월해서 우리 모두의 것이 된게 아닐까. 실제로 소유하는 불편함 없이도 즐기고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우리에게 가끔이나마 주어진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이기도 하다.

그의 그림을 이렇게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다는 것은 나이탓도 있고, 하도 시끄럽고 번잡스러운 세상 탓도 있으리라. 그의 그림속에는 죽는 날, 내가 이 지구상에서 하필 이 땅을 다녀가길 참 잘했다 싶어 슬쩍 미소짓고 싶을 것같은 이 땅의 속 깊은 정서의 진국같은게 있다. 또한 세파에 상처받지 않고는 돌아갈 고향집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처럼 , 우리 사회의 급변에 따르는 온갖 잡스러움과 부박과 가짜만 지금보다 덜했더라도, 그의 그림도 좋은 그림을 넘어 보석처럼 빛날 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나도 이제서야 그의 한때의 극빈을 비극적으로 보지 않기로 했다. 그때를 가슴이 아리게 비극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그가 유명해지고 나서고 그렇담 유명인에 대한 미화의 욕구가 아니었을까. 그 시절의 가난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고 우리 민족 전체의 보편적인 것이었다. 그는 보통사람들이 어렵게 살때 그도 저절로 어렵게 살았고, 보통사람들의 생활이 조금씩 피어갈때 그도 작은집이나마 장만했고, 그림도 돈이 되기 시작한 때를 목전에 두고 세상을 떠났을 뿐이다. 그는 철저하게 보통사람으로 살았으니까 아마 오래 살아 지금같은 명성을 누렸더라면 부자도 됐을테고 파리나 뉴욕도 제 집 드나들듯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예술가는 가난해야 좋은 작품을 남길 수 있다고 주장할 생각이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 흔해빠진 파리나 뉴욕은 커녕 미술학교도 못가봤고, 세계화 소리는 더군다나 못들어봤을 그가 세계 그림 시장에서도 제값을 받을 수 있는 몇안되는 화가라는 것은 이 아니 유쾌한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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